“대입 수학능력시험이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긴 하지만 그런 분수령, 전환점은 앞으로 많아요. 자기 자신의 노력만 있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죠”
곽윤호 부천 하이병원 과장(정형외과 전문의)은 환자에게 건강 수칙을 당부하듯 어디선가 힘들어하고 있을 수험생에게 용기의 말을 건넸다.
성공한 어른의 흔하고 낡아빠진 위로로 치부하기엔 곽 과장의 말은 무게감이 다르다. 1974년생인 곽 과장은 99학번(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이다. 정규교육 과정을 감안하면 93학번 정도여야 한다. 비어있는 6년의 시간이 곽 과장의 조언을 예사로 들리지 않게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땐 반에서 20등 정도는 했죠. 록음악에 빠진 3학년 땐 꼴찌였어요” 곽 과장은 멋쩍게 웃었다. “대학은 가야겠어서 무조건 미달될 것 같은 학과만 찾았죠” 그렇게 선택한 대학이 지방의 한 공업대학교였다. 그것도 후기 야간으로 겨우 들어갔다. 미래에 대한 꿈도, 목표 의식도 없었다.
그렇다고 곽 과장이 넉넉한 집안의 철부지 아들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칸방엔 주방이 없어 구석에 버너를 놓고 음식을 해먹었어요. 화장실은 공동으로 쓰고요” 곽 과장은 가난했다.
운명의 전환점은 소리 없이 찾아왔다. 1997년 겨울, 군 제대 후 곽 과장의 머리에도 서서히 불안한 미래가 떠올랐다. ‘지금 내가 뭐하는 건가, 내가 할 줄 아는 게 뭔가’라는 생각이 곽 과장의 머리를 때렸다. 가족의 생계는 막막했고 곽 과장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암울한 현실을 탈출하는 방법은 공부뿐이었다. “함께 야간 대학을 다니던 30~40대 형님들을 보며 많이 배웠어요. 가정을 책임지며 낮엔 열심히 일하고 밤엔 공부를 놓지 않는 모습에서 20대 젊음을 낭비하는 스스로를 질책했죠” 곽 과장은 결심이 서자 자퇴를 하고 아끼던 기타를 모조리 팔았다. 주변에선 만류했지만 아버지만은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아들을 응원했다.
재수 학원 첫 모의고사 성적은 400점 만점에 220점이다. 그러나 포기란 없었다. 하루 3시간만 잠을 자며 공부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하죠. 버스 멀미를 참아가며 책을 봤을 정도니까요” 선하기 그지 없는 그의 얼굴을 보면 대체 어디서 그런 독기가 쏟아져 나왔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1998년 수능시험 성적은 380점, 상위 0.7%에 해당하는 고득점이었다.
“어차피 지금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다른 사람 말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곽 과장은 그럼에도 조언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설사 잘못됐더라도, 자기 길이 아니더라도 이미 그 자체로 다른 기회를 얻을 원동력이 되죠” 곽 과장은 힘주어 말했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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