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원, 2년전 뇌출혈로 세상과 작별 지인들 미발표 7곡 모아 ‘너클볼 컴플렉스’ 출시 그가 추구했던 소박한 삶의 모습 음악으로 되살아나
너클볼은 손가락 관절(knuckle)을 구부린 채 공을 쥐는 투구다. 너클볼로 던진 공은 회전 없이 날아가는데, 실밥 때문에 불규칙한 표면을 가진 공은 공기의 저항과 부딪히며 불규칙한 궤적을 그린다. 이 때문에 너클볼은 느린 구속에도 불구하고 타자에게 가장 까다로운 ‘마구’로 손꼽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생을 야구에 빗대 노래하다 너클볼처럼 예고없이 세상을 떠난 가수가 있었다.
2010년 11월 6일, 1인 프로젝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하 달빛요정)’으로 활동하던 이진원이 뇌출혈로 투병 중 향년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모든 연주와 노래를 홀로 소화했던 이 가내수공업 아티스트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엔 많은 미발표 음원이 남아 있었다. 고인의 동료와 친동생이 이를 하드디스크에서 끄집어내 고르고 다듬어 새 앨범 ‘너클볼 컴플렉스’를 내놓았다.
이 앨범에 담긴 곡은 연주곡 3곡을 포함해 모두 7곡. 유작이 된 3.5집 ‘전투형 달빛요정-프로토타입 에이’(2010) 이후 발표하려던 3.7집과 4집, 솔로 앨범 수록 예정 곡이다.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로 앨범의 문을 여는 짧은 연주곡 ‘그리운 그 사람’이 스치듯 지나가면, 떠나보낸 연인을 향한 뒤늦은 연가 ‘그리운 그 이름’이 흘러나온다. 담백한 연주에 실린 응어리진 목소리는 자정 무렵 고요한 포장마차 주변 풍경처럼 애잔하게 들려온다.
‘친구’는 어린 시절 친구에게 입은 마음의 상처로 여전히 아픈 중년의 소심한 복수심을 노래한다. 지천명의 소년(혹은 소녀)은 과거로 돌아가 그 친구의 굽실거리는 모습을 미치도록 보고 싶은데,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스다라라 구다라라”라고 읊는 주문은 헛됨을 알기에 서글프다. ‘친구’는 달빛요정이 밴드와 녹음하기 전날 밤 쓰러지는 바람에 미완으로 남을 뻔했던 곡이다. 늦게나마 동료의 수고로 곡이 완성됐으니 ‘달빛요정’의 주문 “스다라라 구다라라”는 나름 효험을 본 셈이다.
격정적인 연주곡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끝나면 앨범의 타이틀과 동명인 곡 ‘너클볼 컴플렉스’가 등판한다. 이 곡은 지난해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굿바이 홈런’에 삽입됐다. 영화는 만년 약체인 원주고 야구부가 기적처럼 전국대회 4강까지 오르지만 그 해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단 한 명의 선수도 지명받지 못한 씁쓸한 현실을 담고 있다. 그러나 ‘너클볼 컴플렉스’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찬란함을 노래하고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 절망부터 배우는 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과정이지 결과는 아니다’란 충고는 허무하다. 그러나 노래 한 곡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주는 기적은 흔치 않다. 노래는 잠시 동안의 위로면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너클볼 컴플렉스’가 바로 그런 곡이다.
인디음악계에서 제법 인지도를 갖췄던 달빛요정이 연 수입 1000만원 안팎의 팍팍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요절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이야기와 맞물려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남긴 음악이 소박하고 포근하게 살아나고 있다. 김광석이 사람들에게 함께 쓸쓸해질 수 있는 기쁨을 나눠줌으로써 세대를 관통하며 살아가듯, 음악으로 남은 달빛요정 역시 작지만 오랫동안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살아남을 것 같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