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판매액 총 26조9387억원 국민 5명당 1명꼴로 구매한 셈

개인이 모든 것 해결해야 하는 사회 로또는 좌절먹고 자란 시대의 괴물

도박 아닌 건전한 오락 되려면 예측가능한 사회부터 만들어야

사람들은 1000원으로 일주일간의 행복을 샀지만, 로또는 ‘위험사회’의 불행을 먹고 자랐다. 지난 2002년 12월 ‘인생역전’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로또가 국내에 처음 선보인 지 10년. 언제 ‘깡통인생’이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경제위기의 시대, 로또는 사람들의 좌절을 먹고 괴물처럼 자라났다.

1회부터 지난 17일 추첨한 520회차까지 로또의 누적 판매액은 총 26조9387억원에 이르렀다. 회당 평균 518억원어치가 팔렸다. 2004년 8월부터 게임당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아진 가격을 적용하면 회당 5000만번의 게임이 이뤄졌다. 1인당 5게임을 구매한다고 치면, 회마다 국민 5명당 1명꼴로는 로또를 샀다는 얘기다. 가족 중 한 명은 매주 로또에 ‘인생 한방’의 꿈을 거는 셈이다.

경제가 불황에 빠질수록 복권이 잘 팔린다는 이야기도 들어맞았다. 로또 등장 다음해인 2003년엔 3조8031억원이었던 판매액이 2007년 2조3646억원으로 4년간은 해마다 9~10%씩 줄었지만, 2008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서 지난해엔 2조8120억원까지 늘어났으며, 올해는 게임당 값이 1000원으로 내린 8년 만에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크다.

연간 로또 판매액이 늘기 시작한 2008년은 고유가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및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때다. 회당 1등 당첨확률 814만분의 1. 삶이 불행해지고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사람들은 0에 가까운 수학적 확률을 아직 실현되지 않았을 뿐인 100%의 종교적 확신으로 대체한다. 이때 1000원짜리 ‘심심풀이 오락’은 당첨금 수십억, 수백억원을 노린 ‘도박’이 된다.

서영표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위기뿐 아니라 불평등지수가 높고 부의 양극화가 심하며, 신분 상승 기회가 봉쇄된 사회적 조건이 로또 같은 ‘한탕주의’와 ‘일확천금의 꿈’을 키운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의료와 교육뿐 아니라 관혼상제 등 개인의 모든 일상이 상품화되고 국가의 복지나 안전망보다는 개인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사람들은 보험이나 복권, 사행산업에 집착하게 된다”고 풀이했다.

상위 1%가 부를 독식할 뿐 아니라 계층 간 이동이 불가능한 ‘닫힌 사회’에서 ‘내 삶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심리는 한탕주의를 더욱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노동만으로는 주택과 의료ㆍ교육 문제 등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없고, 이자 소득과 주식ㆍ펀드 등 금융상품 및 부동산 시세 차익으로 인한 부의 축적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복권 열풍은 필연적인 결과다. 로또는 학벌과 직업ㆍ재산 등에 상관없이 1000원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게임’인 셈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열심히 일해서는 소득을 불릴 수 없고, 최소한의 안락한 삶도 이룰 수 없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막연한 환상에 기대게 된다”고 말했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프거나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되는 상황처럼 개인이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때 사람들에겐 뭔가 의존할 것이 필요하다”는 게 곽 교수의 분석이다. “굉장한 기업조차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미래가 예측 불가능한 사회에서 ‘한탕주의’를 꿈꾸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람들은 거리의 인형뽑기를 ‘투자’라고 생각하거나 내 미래가 걸려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또를 유원지의 다트나 사격처럼 ‘심심풀이 오락거리’로 즐기는 사회는 건강하다. 하지만 매주 몇천원이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투자’가 되고 수십억원의 당첨금을 노린 ‘베팅액’이 되는 나라는 불행하다. 그때 ‘로또’는 사람들의 좌절과 불행을 착취하는 ‘달콤한 환영’이 되고, 수익금의 ‘공익적 사용’은 ‘악어의 눈물’이 될 것이다.

서 교수는 “로또 같은 합법적 사행산업이 오락이냐, 도박이냐를 가르는 기준 역시도 결국 그 사회의 평등과 복지 및 사회안전망의 정도가 될 것”이라며 “노동에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고, 이를 통해 최소한의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