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2회> 사랑을 위한 의식 19

사실 평양은 축제무드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위 자본주의 놀음 중에서 으뜸이라고 여겨지던 골프와 랠리대회가 거의 동시에, 거의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그 경기를 벌이기 위해 찾아온 선수들의 면면이 기가 막혔다.

개인적으로 꼽아보면 그 누구라도 여왕으로 칭할 만한 유명한 골프선수들이 줄줄이 찾아오질 않나, 듣도 보도 못한 번지르르한 자동차를 끌고 천하 갑부들이 선수가 되어 찾아오질 않나… 북한 주민들로서는 뿌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기에 너무도 충분했다.

하지만 딱 한 명, 유호성은 그 모든 것이 불만스러웠다. 왜냐고? 자기가 이 세상 최고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일수록 유독 심하게 느끼는 증상… 이를 테면 왕자병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나, 남쪽나라 재벌 왕자님 아니세요?”

왕자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에게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왕자님이라고 호칭을 달아주었으니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누… 누구신데 절 알아보십니까?”

마침 평양골프장 앞을 반환점으로 하여 수십 대의 랠리 머신들이 꽁무니에서 불을 뿜으며 드리프트를 하는 중이었다. 브레이크 패드에 꽉 물린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내는 푸른 연기가 천지에 자욱하고, 가슴을 찢을 듯이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엔진음이 고막을 거스르는 중에도… 아! 왕자님이라고 호칭하던 그 여인의 미모는 두드러졌다.

“관심이 있으면 누군들 모르겠어요?”

“평소에 저에게 관심이 있었다고요?”

“그럼요. 남한 최고의 자동차 속도경기 선수 아닙니까?”

“아,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잘못 짚었나요?”

“아닙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유호성은 말을 더듬었다. 그건 눈앞의 상대가 미모의 여인이란 것을 인정하는 고질병이었다. 예쁜 여자 앞에서 그는 언제나 얼이 빠지곤 했으므로.

“한국에서 오신 분인가요? 북한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어머, 우리 북에서도 제대로 배운 사람들은 사투리를 쓰지 않습니다. 신문도 매일 보고요… 그러니 남한의 유명한 자동차 속도경기 선수를 모를 리 없지요.”

그녀는 당돌하게 대답했다. 하긴 전혀 낯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와 왕자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것으로 보아도 그녀는 대단히 활달한 성격임에 틀림없었다. 어쨌든 말 한 마디에 그녀는 제대로 배운 인텔리 여자라는 사실까지도 밝힌 셈이었다.

“아, 그렇군요. 어쨌든 반갑습니다.”

유호성은 그제야 허리 숙여 그녀에게 인사했다.

“저도 반가워요. 전… 신문기자질을 하고 있는 예원희라고 합니다.”

“신문기자질요?”

“아, 여기선 기자질이란 게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선생질, 기자질… 다들 그렇게 쓰고 있어요.”

그녀는 바로 권도일을 사랑에 눈멀도록 한 예원희였다. 하지만 유호성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 턱이 없었으므로 그저 눈을 멀뚱거리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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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