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6회> 사랑을 위한 의식 (1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테… 테스타로사를 정말로 빌려올 생각이십니까?”
“내가 언제 빈말 하는 것 보셨습니까?”
재벌2세의 뜻이 확실한 모양이었다. 검은색 동체에 붉은색 요염한 시트를 드러낸 무개차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는 1957년에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스카글리에티사에서 제작한 모델로, 현재 전 세계를 통틀어 22대 밖에 없는 희귀 명차이다.
“테스타로사… 그게 ‘붉은 머리’라는 뜻입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 놈이 태어나자마자 그 다음해인 1958년에, 붉은 머리를 흩날리며 르망 24시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단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당장 섭외해서 공수해오도록 하겠습니다. 그 외에는 대략 한 대에 1억 원짜리 차들로 쇼를 구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지요. 유호성을 단번에 꼬여 오려면 좀 더 화끈하게 접근해야만 합니다. 이왕에 큰돈을 쓸 때 제대로 써야 효과를 본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자동차 경매에서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차도 구해보세요.”
재벌2세는 술잔 받침으로 쓰이는 4각 종이 위에 대화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는 중이었다. 재벌2세가 그런 모습을 보일 경우엔 그의 말이 곧 어길 수 없는 명령이라는 것쯤은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자동차에 관해선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경매에서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차라면 ‘페라리 250 GT SWB 캘리포니아 스파이더’일 것입니다.”
권도일이 누구인가? 그는 2대에 걸쳐 경주용 자동차 드라이버로 활약하는 선수였다. 그의 부친 권일주가 단지 몸으로만 달리던 선수였다면 그는 어느새 전문적인 지식과 전략을 겸비한 선수로 거듭나 있었다.
“캘리포니아 스파이더? 이름 한 번 멋지군요. 그래 그 캘리포니아 거미가 얼마인 줄도 알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어느 해 인지는 잊었지만… 아무튼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어느 날, 이탈리아 페라리 경매장에서 1961년형 스파이더는 영국의 유명한 방송인 크리스 에반스에게 우리 돈 157억 원에 팔렸지요.”
“157억 원? 1961년 형 낡은 차가…”
“클래식 카일수록 값이 높지요. 정말로 그 차를 빌려올까요? 문제는 그 차의 소유주들이 결코 돈 몇 푼에 빌려줄 턱이 없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내가 권도일 전무에게 부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껏해야 1억 원 남짓 하는 자동차들로 생 쇼를 해봐야 유호성이 눈 하나 깜작이나 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회장님.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남은 기간도 짧고, 성사 여부도 불투명하니 드라마 속에 나온 명품 차로 컨셉을 바꿔보는 것이 어떨까요? 유호성 선수가 드라마를 즐겨본다고 하기에 퍼뜩 떠오른 아이디어입니다.”
“그것도 과히 나쁘진 않겠군요. 예를 들면?”
“얼마 전에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가 유명세를 탔습니다. 그 드라마엔 유독 명품 자동차가 많이 등장했지요. 이를테면 영국 수제 스포츠카 생산회사인 ‘로터스’의 ‘유로파 S‘ 라든지, 엘리스 SC’ 등등입니다.”
“어쨌든 내 생각은 변함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명차들로 북한의 거성로에서 스피드 쇼크를 벌이는 것이 1차 목표이니 정진합시다. 해볼 때까지 해보다가 정 뜻대로 안 될 때에 다시 의논하도록 하지요.”
이렇게 말하고 그는 다시 4각 종이에 그 내용을 꼼꼼히 기록했다. 재차 강조하지만 그 행동은 어길 수 없는 명령과 다를 바 없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