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3회> 모든 길은 하나로! 32
“잘 주무셨소? 권도일 선생?”
일장춘몽에 빠져있었던가? 감은 눈 속으로는 아직도 예원희의 자태가 어른거리고 들이쉬는 숨결마다 여인의 분 냄새가 아련할 뿐인데… 귓전에 들려오는 건 우렁차면서도 사포처럼 거칠거칠한 제6사단장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아니, 사단장님이 어쩐 일이시지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오. 권 선생께선 도대체 어찌 된 일이신지?”
“뭐가 잘못 되었나요. 도대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라고 하지 않았소? 선생께서는 매우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우리 공화국에 오신 것 아닙네까? 그런데, 어째서 임무도 완수하기 전에 위법한 일부터 저지르고 말았습네까?”
이른 아침부터 갑자기 들이닥친 제6사단장의 양 옆으로는 마스터키 꾸러미를 들고 있는 평양호텔 영선부장, 그리고 당 서열 33위 간부인 도형철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배석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뿔싸! 어젯밤에 예원희와 동침한 사실이 벼락처럼 떠올랐다. 그런데 침대에 함께 누워 있어야 할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든 것일까?
“어째서 매춘을 하게 된 것인지 묻고 있지 않습네까?”
“매춘이라고요?”
“신고가 들어왔으니 내가 새벽부터 달려 온 것 아니갔소?”
매춘이라니? 권도일은 용수철이 튕기듯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잠옷 차림이었다. 어젯밤 그토록 진하게 상열지사를 벌였으면서도 마지막에 잠옷이나마 제대로 챙겨 입었다는 사실이 고맙게 여겨졌다.
“그런 일… 없습니다. 매춘이라뇨?”
대답은 이렇게 했어도 정신은 아득하기만 했다. 명색이 일류급이라는 평양호텔, 그것도 외국인이 묵는 객실을 마스터키로 따고 들어온 것부터가 엄청난 도발이라고 여겼지만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일 났습네다. 매춘이란 미제 단물이나 마시고 자란 놈들이 벌이는 짓인데… 권 선생께서 어째 그들처럼 놀아나셨습네까? 교화소에 가서 반성교육을 시켜드릴 수도 없는 일이고…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난감하다는 투였다. 물론 권도일도 그 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천문학적인 경비를 쏟아붓는 프로젝트에 한 줌 재를 뿌리는 일이라 생각하니 암담할 따름이었다.
“따라오시오, 권 선생.”
제6사단장은 명령하듯 한 마디를 툭 던지고는 객실 문을 나섰다. 아직 잠옷차림인 권도일이 옷을 갈아입을 여유도 주지 않은 채 그는 길게 뻗은 복도를 따라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이 어찌나 둔중했던지 바닥에 두꺼운 양탄자가 깔려 있었지만 발자국 소리는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더 이상 주저하지 못하고 권도일이 그의 뒤를 따랐다. 제6사단장과 열 댓 걸음쯤 뒤로 처졌을 때 옆으로 바짝 다가선 이는 도형철이었다.
“내가 고자질 하지 않았습네다. 우리 예원희… 그 여자도 절대 그런 짓 할 여자가 아닙네다. 아무래도 미행이 따라붙은 것 같습네다.”
옆으로 바짝 다가와 재빠르게 귓속말을 전하는 도형철의 안색은 겁을 잔뜩 먹었는지 파랗게 질려있었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