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가는 것의 은밀한 에로티즘(L`erotisme discret de ce qui pourrit)

이상한 부류의 사람들이 주목하는 예술품이 있다. 마이욜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덧없음에 관한 전시회’는 공포와 끔찍함에 열광하는 커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림들은 해체된 육신, 비웃는 듯한 모습의 해골에 관한 것이다.

전통적인 해시계에는 종종 ‘Homo fugit velut umbra’라는 문장이 들어있다. ‘인간이 그림자 처럼 스러진다’는 뜻이다. 이는 ‘인생을 노래한 파스칼리아’란 부제가 달린 17세기에 만들어진 작자 미상의 음악 제목이다. 죽음의 춤은 살점이 붙어있는 중세의 해골, 피부를 벗겨내는 죽음의 나신(裸身)들을 연상시킨다. 가슴을 에는 후렴구를 지닌 이 곡은 ‘Bisogna morire(죽어야만 한다)’라는 동일한 문장을 쉴 새 없이 반복해댄다.

“인생은 꿈이라오/아주 부드러워 보이나니/하지만 즐거움은 덧없고 죽어야만 하네/의학은 아무 짝에도 소용없고/키니네도 마찬가지/회복이 불가능하니/죽어야만 하네/그 어떤 훌륭한 과학도/욕망을 잠재울/단어들을 찾아낼 수 없으니/죽어야만 하네/젊은이, 어린이, 그리고 모든 이/모두가 재로 변하지/죽어야만 하네/건강한 자들과 병든 자들/용감한 자들과 온화한 자들/그들 모두가 끝을 맞이한다오/죽어야만 하네/하지만 당신은 가슴 속으로/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지/죽어야만 하네”

궁정에서 사람들이 ‘죽어야만 한다’를 노래하던 시절, 귀족들은 자신의 정부(情婦)들에게 ‘메멘토 모리’란 이름을 가진 보석을 선물했다. 죽음의 상징, 망자의 머리, 서로 겹쳐놓은 뼈,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관 모습 등이 보석을 장식하고 있었다. 때로는 장식이 보다 우회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다.

“반지들은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매 순간 인간들에게 깨닫게 해주는 비망록 역할을 했다”고 미술관이 발간한 카탈로그에서 델핀 앙투안(Delphine Antoine)은 설명한다.

“‘Humana vana(인간은 덧없다)’란 표현은 인간들의 삶, 부서지기 쉬운 육체, 살점으로 뒤덮인 뼈, 지상에서의 존재가 공허하고 덧없으며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상에서의 삶이 신성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기독교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이러한 허무의식은 전염병, 30년 전쟁에 대한 공포, 죽음의 무리가 창궐하는 세계를 반영한다.”

중세 말엽 유럽 전체를 납골당으로 변모시킨 흑사병과 전쟁은 어두운 불안감으로 인간의 의식을 짓눌렀다. 교회와 수도원의 사체상(死體像)들은 신자들로 하여금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고통의 삶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해체 중인 벌거벗은 시신들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조각되었기에, 사람들은 거의 썩어가는 냄새를 느낄 정도였다.

‘모든 것이 먼지에 불과하니 오직 너의 구원만을 생각하라’는 거부와 희생의 메시지에 ‘카르페 디엠’이라는 또 다른 메시지가 추가되면서 서로 모순을 이루게 된다. 새 메시지는 삶의 장미들을 수확하라고, 사랑을 해보지 않고서 죽지 말라고 권유했다.

일부 화가들은 거의 전복적인 방식으로 교회가 단죄하는 쾌락에 자신을 내맡기는 해골의 모습을 그려냈다. 해골들은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거나, 애인의 품에서 젊은 처자들을 끄집어내고, 대주교, 병사 및 왕들과 함께 춤의 스텝을 밟는다.

죽어야만 한다면 그 죽음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삶이 “이미 패배해 버린 전투”인 까닭에 그만큼 즐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게 인생이야’ 전시회는 해골의 양면성에 대해 극도로 명료하게 접근한다. 때로는 영적인 가치들이 서로 가까워지도록 격려해주고, 때로는 육체의 소멸에 대한 무시무시한 공포를 보여준다. 육체가 스러져가는 풍경이 삶을 더 사랑하도록 만들어주는 탓이다.

죽은 파리들로 뒤덮인 해골을 보여주는 대미안 허스트(Damien Hurst)의 작품, 문자 그대로 구더기들이 방울져 떨어지는 채프먼(Chapman) 형제의 끔찍한 조각에 사람들이 쇄도하는 모습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일부 작품들은 “죽음을 기다리지 마세요”라고 속삭인다.

이런 시각을 다룬 가장 노골적이고도 추잡한 작품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의 목판화들이다. 1538년에 제작된 이 작품들은 교회의 학설들을 조롱하고 있는 해골들을 그려내고 있다. 변변찮은 자신들의 성기를 단련시키려는 것 처럼 대퇴골 사이에 북을 끼우고 해골들은 춤을 춘다.

고위 성직자와 대부호 주위를 돌다가, 해골들은 ‘침대가 가장 부드러운 잠자리니 가능한 한 많은 사랑을 나누라’는 시구를 읊으며 자신들의 마지막 거처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를 연결시키는 사랑이 삶을 가능하게 하네/우리 마음이 그걸 준비하지/오랫동안 도망가지 못할/왜냐하면 죽음이 우리를 떼어놓을 테니까.”

‘Homo fugit velut umbra’는 ‘아르페지아타(Arpeggiata)’ CD 속에 삽입되어 있는데, 스테파노 란디(Stefano Landi)의 작품에다 익명의 작품이 하나 더 들어 있다. ‘그게 인생이야, 덧없음, 폼페이에서 다미엔 허스트까지(C`est la vie, vanites, de Pompei a Damien Hurst)’는 스키라(Skira) 출판사가 펴냈다.

‘그게 인생이야, 덧없음, 폼페이에서 다미엔 허스트까지’ 전시회는 2010년 6월 28일까지 마이욜(Maillol) 미술관에서 열린다. 주소는 파리 제7구 그르넬(Grenelle) 거리 59-61번지이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뤼뒤박(Rue du Bac) 역에서 내리면 된다.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오픈하며, 금요일에는 오후 9시30분까지 연다.

(이미지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들)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