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바람 부는 길(42)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결국 Air Mule의 연구를 당장 중단하라는 요구로군요.”

“그렇소.”

“하지만 나는 Air Mule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니 그런 거짓말은 그만 하시오. 얼마 전까지 당신과 한 직장에서 일했던 제임스 리 박사가 곧 이리로 올 것입니다. 박사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듣게 될 것이오.”

낯선 사내는 다시 한 번 DVD플레이어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좀 전에 보았던 제임스 리 박사의 모습이 재차 떠올랐다. 반복, 재방송… 그들의 요구를 다시 한 번 각인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제임스 리 박사의 목소리와 표정으로 위장된 N-Dos단의 요구사항은 과격했다. 하지만 목적은 오히려 단순했다. 그 요구사항을 묵묵히 듣고 있는 동안 권도일은 오히려 단단히 포장되어 있던 거성의 비밀상자를 풀어보는 느낌이었다.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포장된 그 한 가운데에는 어쩌면 재벌 2세만의 또 다른 프로젝트가 담겨있지는 않을 런지.

“이렇게… 살아서… 보게 되다니 반갑습니다.”

화면이 어두워지고 휘장이 다시 드리워진 뒤, 덜덜덜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이어지던 순간에 예정대로 제임스 리 박사가 벽체를 밀고 나타났다. 박사의 뒤로는 흰 가운을 입은 낯선 사내들 서너 명이 따라 들어왔다. 알고 보니 벽면 자체가 콘크리트로 된 커다란 문이었다. 제임스 리 박사는 목소리 톤을 한껏 높여가며 권도일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왠지 느낌부터가 묘했다.

“살아서…?”

“……”

권도일의 팔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지금 그의 주위에 둘러서 있는 낯선 사내들은 모두 아랍계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한국말에 능통한 작자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말을 얼마나 잘 하는지는 몰라도 느낌으로 전달되는 묘한 감정까지 일일이 체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박사님! 저도… 살아서… 박사님을 만나니 기쁘군요.”

“…나 역시, 반갑습니다.”

권도일은 제임스 리 박사가 감시당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의도적으로 ‘살아서…’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나, 경직된 눈매로 보아서도 분명했다. 입가에 주름이 확연히 드러날 만큼 억지웃음을 짓고 있지만 어쩌면 목숨을 담보 잡히고 위협받는 중인지도 몰랐다.

권도일은 박사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제임스 리 박사는 선뜻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표정은 활짝 웃고 있었지만… 제임스 리 박사의 검지손가락은 계속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권도일의 손바닥에 무언가 글씨를 쓰는 중이었다.

‘눈’

제임스 리 박사가 은밀하게 손바닥에 써넣은 글씨는 ‘눈’이 확실했다. 권도일은 그 순간부터 제임스 리 박사의 눈동자만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박사의 행동이 지극히 어색한 것으로 보아 어딘가에 설치된 카메라가 작동되는 모양이었다.

“박사님도 이곳에 납치당해 오셨습니까?”

권도일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납치라니요? 나는 내 뜻을 펼치기 위해 당당히 이곳으로 찾아왔습니다.”

박사는 이렇게 말했지만, 웬걸… 그의 검은 눈동자는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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