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후 다시 만나게 된 영화 ‘핑크 강간범’ (Le violeur à la rose» sur les écrans trente ans après)

지난 9월 9일 수요일 저녁에 열린 ‘레트랑주 페스티벌(L`Etrange Festival)’에서는 강간을 다룬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일본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 에로틱 필름을 상영했다. 영화 속에서 희생자들은 가해자와 사랑에 빠진다. 영국 출신의 영화평론가 해리슨 댐프셔는 “강간은 오랫동안 실험영화의 핵심 요소였다. 하지만 하세베 야수하루(長谷部安春)만큼 여성혐오증으로 점철된 폭력과 정치적으로 다른 생각을 갖고 이 민감한 주제를 그려낸 영화인은 거의 없다”고 평했다.

변태적인 두 명의 미치광이가 순진무구한 아름다운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강간하는 이 영화는 폭력적인 장면들 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들이 다시 강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일부 여성들은 가해자에게 돈을 제시하며 자신을 다시 능욕해주길 원한다.

영화에 대한 일별이 끝났다면, 해리슨의 표현에 따라 ‘일탈적인 착란의 혐오스러운 부분’에 대한 묘사를 보다 상세히 검토해보기로 하자.

‘핑크 강간범’(일본 원제는 ‘レイプ25時 暴姦’)은 주유소에서 근무하는 이시야마 유다이가 붉은색 점퍼를 입은 한 미지의 인물을 숨겨주는 데서 시작한다. 그를 뒤쫓는 사람들은 이 인물이 저지른 죄를 앙갚음하려는 동성애자 건달들이다. 크림슨이란 이름의 도망자는 연쇄강간범이다.

복수를 노리는 게이들은 자신들이 강요당한 섹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크림슨에게 맛보이려 든다. 하지만 크림슨은 천만다행으로 만난 주유소 직원, 유다이 덕분에 갱들로부터 간신히 벗어나는데 성공하고, 답례로 유다이가 스타 무희를 강간하도록 도와준다.

유다이는 자신의 체험에 대해 아주 행복해하면서 크림슨의 규칙적인 공모자가 되기도 하고 혼자 강간을 저지르는 대담한 인물로 변신한다.

영화에 대해 해리슨은 희생자들이 마치 슬픈 운명을 좋아하는 듯 그리고 있다며 도발적인 성적 환상을 다루는 하세베의 영화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크림슨은 대가를 치른다. 동성애자 갱들에게 잡힌 후 그는 가혹하게 난교를 당한다. 갱들은 크림슨을 응징하기 위해 망치로 이빨을 부러뜨린다. 그러나 이 허망한 해피엔드는 무상의 성적 폭력을 통해 관객들의 리비도를 충족시킬 수 있는 부차적인 기회일 뿐이다. 게다가 영화는 아름다운 스타 무희를 마지막으로 강간하는 극적인 장면으로 끝난다.

강간을 누가 다시 요구했을까? “강간이 주는 성적 환상, 영화의 도덕적인 파렴치함에 대해 당신이 무엇을 생각할지라도, ‘핑크 강간범’이 감동적이며 기술적으로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무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건 충격이다”고 해리슨은 결론 내린다. 무수한 경고가 행복한 위선이 아닌지 자문해볼 정도이다.

‘핑크 강간범’이 1977년 일본에서 개봉됐을 때 엄청나게 시끄러웠다고 영화 비평가 바이서(Weisser)는 기억한다. 너무나 반향이 커 니카츠(日況) 영화사가 ‘강간 영화’를 덜 만들기로 결정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영화가 코미디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32년이 지난 후 오늘날 일부 사람들 역시 터무니없다고 평가한다. ‘에이가고고’ 편집장인 마르탱 비에이요는 영화를 ‘기괴한 우화’로 규정하면서 이런 종류의 영화가 일본에서 무수히 제작된다고 강조한다. 유별난 장르인 것이다.

비에이요는 “‘강간’ 영화의 등장이 1960년대 초에 에로틱 장르의 출현과 맥을 같이한다”고 지적하면서, 강간을 다룬 영화의 또 다른 거장인 와카마츠 고지(若松孝二)의 몇몇 작품을 거론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은 ‘최하층 성범죄의 현대사’, ‘잔인한 비명과 무상의 폭력’, ‘강제적 강간이냐 동의한 강간이냐?’,

‘한꺼번에 13명을 강간하는 폭력의 악마’, ‘강간을 거듭하는 악마적이고도 잔인한 강간범’ 등이다. 강간 문제가 일본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주제임에는 틀림없다.

허구적이거나 가짜라면 그 어떤 성적 환상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지 않는 일본에서는 강간이 너무도 대중적인 주제이다. 여성들조차 강간범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을 놓고 대화를 나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말에 아이사키 게이코(愛崎けいこ)가 시나리오를 쓴 ‘더 레이프만(The レイプマン)’이란 만화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 후 만화영화와 영화로 제작되었다.

‘더 레이프만’은 낮에는 교수, 밤에는 정의의 사도로 역할을 수행하는 두 얼굴의 남자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은 자기 페니스를 무기로 사용하며, 배반당하거나 속았거나 실망한 모든 연인에게 가면을 쓰고 자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는 남편을 차버리거나 약혼자를 약탈한 나쁜 여성들을 공격하면서 “나는 삽입을 통해 못된 자들을 응징한다”고 설파한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통해 무얼 얻어낼 수 있을까? 마르탱 비에이요는 “별로 없다”고 일축한다.

“로맹 슬로콩브(Romain Slocombe)는 강간 영화가 보여주는 ‘상업적 차원의 감정 배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을 자극하는 단순한 허구작품이지요. 물론 이 영화들에 대한 서구 쪽 수용은 다른 주관, 다른 문화적 맥락을 통해 이루어질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폭력의 남용보다 ‘훌륭한 도덕’의 부재를 더 비난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서구인들 역시 이러한 일탈적 주제를 탐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본에서의 강간이라는 주제는 항상 금기시됩니다.

그러한 주제를 반항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은 착란적인 이러한 영화들 속에서보다 남성지배 문화가 일상을 이루는 사회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해롭게 뿌리내리고 있는가를 찾아내는 문제와 더욱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레트랑주 페스티벌’은 파리 제1구 시네마 거리 2번지에 소재한 포럼 데 이마주(Forum des images)에서 9월 13일까지 열렸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아시아 영화들을 홍보하고 연구할 역동적인 축을 만들어내기 위해 ‘에크랑 아지(Ecrans Asie)’란 잡지가 이번 기회에 창간된다는 점이다. (이미지는 하세베 감독의 ‘핑크강간범’)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