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바람 부는 길(1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순례 단이 산타 마리아 호텔에 도착한 이후, 모두 다 각자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현지 가이드를 만나십시오. 가이드에게는 미리 손을 써 놓을 것입니다. 권 전무께서는 지독한 멀미로 인한 두통을 호소하며 현지 병원으로 찾아가면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이패드에 담긴 내용대로 하시면 되지요.”
배후에 숨겨진 사건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아직 실감하지는 못하지만 제법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미션이었다. 어쩌면 그런 연기보다도 베들레헴에서의 시차 극복 때문에 밤잠을 설쳐야 할 것이 더 걱정스럽기도 했다.
“병원은 호텔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베들레헴 언덕 중앙에 있습니다.”
“언덕이 큰 모양이지요? 병원까지 들어서 있는 걸 보면.”
“역시 드라이버로는 최고지만 종교적인 면으로는 빵점이로군요. 권 전무께서는 오늘부터 사흘 내에 이걸 모두 암기하셔야 합니다.”
재벌 2세는 3M 메모지에 사이트 주소를 적더니 아이패드 위에 척! 붙여놓았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킬로미터 지점, 해발 790미터에 달하는 베들레헴 언덕은 바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입니다. 다윗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이 사이트를 찾아서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사흘 안에 성경 상식을 두루 갖추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프로젝트이니 실수 없도록 잘 하셔야만 됩니다.”
잠시 잠깐 만났을 뿐인데 재벌 2세는 엄청난 미션을 권도일에게 안긴 셈이었다. 권도일의 입장에서 보자면 변명 한 번 못하고, 생색조차 제대로 내보지 못한 채 걸머지게 된 큰 짐이었다. 원래 권도일이 거성 그룹과 인연을 맺게 된 까닭은 아버지 권일주의 한풀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거성 그룹의 힘을 빌어서… 아버지 권일주의 인생을 망쳐놓고 반신불수로 만들어 놓은 유민 회장을 응징하기 위함이었는데, 일이 꼬이다보니 거성 그룹의 한풀이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게 된 셈이었다.
“베들레헴 언덕은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구 안에 있습니다. 유명한 관광지이기 때문에 관광객들 틈에 휩쓸려 숨어 다니기 좋지요. 그곳에 예수탄생 성당이 있습니다. 바로 그 중앙 정문 앞에서 권 전무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 사람을 따라 에이발 산 계곡으로 가면… 1차 임무는 완수하는 거지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접경지역을 두루 활보하겠군요. 영어를 잘 못하는데 상관없을까요?”
“관광객, 아니 성지 순례 단이 꼭 영어를 잘하란 법은 없지요. 권 전무님은 장차 시험비행하게 될 에어 뮬이나 X-호크만 잘 다뤄주면 됩니다.”
“어떤 기종이든 운전 방면에서는 자신 있습니다.”
“그래서 권 전무님을 이스라엘까지 보내려는 거지요. 사고를 억지로 무마한 이스라엘 당국은 우리 거성 그룹과 결별할 생각마저 하는 것 같아요. 거성 최고의 전략 형 공기역학기술 보유자인 공평호 박사를 잃고, 게다가 블루드라이브 기술 수석 연구원인 제임스 리 박사까지 행방불명되었으니 테러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와 손잡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몰라요.”
“아, 테러! 부상당한 이스라엘의 후밍 박사가 그 사고를 테러라고 주장한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우리 거성그룹의 성장발전을 시기하는 어떤 단체의 짓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측에서는 중국 2대 승용차업체인 ‘동풍기차’와 합작하는 방안도 추진 중인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권 전무께서 나서주셔야만 합니다. 사고로 주저앉은 에어 뮬을 다시 띄워주세요.”
재벌 2세는 초롱하고 강렬한 눈빛으로 권도일을 바라보았다.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빛이 그리도 강렬할까? 아니면 방금 임팔라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은 사자의 눈빛? 어쨌든 강렬한 그의 눈빛엔 무언의 약속이 담겨있었다. 장차 거성의 동지로서 뜻을 펼쳐보자는 무언의 제의! 이번 프로젝트는 그 제의에 앞선 테스트임에 분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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