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 끝까지, 죽을 때까지 (46) 글 채 희 문 | 그림 유현숙
그레이스 켈리… 그랬다. 기자들이 거성 그레이스 팀의 머신으로 몰려든 까닭은 왕년의 은막 스타이면서 모나코의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의 초상이 멋지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레이스 켈리 왕비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그리 몰려간 것은 물론 아니었다.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주르날 드 디망세’는 ‘셜린 위트스톡’과 ‘알베르 2세’의 숨은 사연을 대서특필 한 바 있었는데… 이쯤에서 그 배경을 설명하기로 한다.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미녀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 왕비로 등극했다. 그때 전 세계인들의 관심 속에서 성대한 결혼식이 이루어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후 55년, 바로 작년에 모나코에서는 또 한 번의 성대한 결혼식이 벌어졌던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수영선수였던 33세의 여인 ‘셜린 위트스톡’과 현재의 모나코 국왕인 ‘알베르 2세’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는 말이다. 33세의 아내와 55세의 남편, 평민이었던 아내와 국왕인 남편, 화려한 미모의 아내와 수수한 용모의 남편… 물론 이런 기막힌 요소가 모나코 국민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있었겠지만 절묘한 타이밍을 뜻하는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모나코의 알베르 2세 - 혼외 자녀의 소문을 덮기 위해 유럽 왕실의 유명인들을 대거 초청하여 성대한 결혼식을 열다.’
‘셜린 위트스톡 - 왕비가 되는 순간에 눈물을 보이다.’
‘셜린 위트스톡 - 세기적인 결혼에 앞서 세 번이나 외국으로 도망가려 하다.’
대충 이런 제목을 단 기사들이 모나코는 물론, 프랑스, 영국 등의 유명 일간지 제목으로 장식되었던 것인데… 뭐가 어떻다고? 혼외 자녀의 소문? 눈물? 도망?
이야기가 여기까지 진전되었으니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하자. 모르긴 해도 돈 많은 나라의 왕인 알베르 2세는 꽤나 바람둥이였던 모양이다. 미국의 부동산 중개인, 전직 스튜어디스, 이탈리아 여성 작가 등과 열애 끝에 이미 아홉 살 된 딸과 여섯 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소문이 들끓었다. 셜린 위트스톡과 결혼 발표를 한 뒤에 그런 소문이 돌았으니 그녀가 결혼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도망가려 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들이 신문을 온통 장식했다는 말이다.
하필이면 두 번째 탈출을 시도한 때가 작년 5월 말, 모나코에서 F1 그랑프리 경주가 벌어지던 기간이었다. 모나코 전체가 자동차 축제에 들떠 있을 때 셜린 위트스톡은 니스공항에서 헬기를 타고 지중해를 넘어 프랑스로 도망가려다가 왕실에 발각되어 여권을 빼앗기고야 만 것이었다.
세기의 결혼, 자동차 경주, 그레이스 켈리 왕비에 이은 또 한 명의 미녀 왕비… 이런 기억이 아직도 모나코 국민들의 가슴속에 절절히 맺혀 있던 중에 이번 몬테카를로 랠리가 열리게 된 것인데, 공교롭게도 코리아에서 출전한 무명선수의 머신에 그레이스 켈리 왕비의 초상이 크게 그려져 있더라는 소문이 기자들에게 전해졌더라는 말이다. 그러니 타이밍이 절묘하달 수밖에.
“협찬사의 로고를 떼어내고 그레이스 켈리 왕비의 초상을 크게 그려 넣은 이유가 뭡니까?”
“어째서 불에 탄 차를 도색도 하지 않고 출전했습니까?”
“팀 이름도 ‘그레이스’로군요. 이번이 처녀 출전입니까?”
“코-드라이버가 미스 코리아 출신이라던데, 맞나요?
거성 그레이스 팀의 권도일, 김지선에게 각국의 기자들이 몰려들어 영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 온갖 나라 말로 질문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유민 호크아이 팀의 유호성과 전진후는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염병! 여태껏 남의 다리 긁어준 셈이로군, 이럴 줄 알았으면 알베르 2세 누드사진이라도 그려올 걸 그랬어.”
전진후는 기자들을 향해 코를 팽! 풀어 젖히더니 식씩거리며 숙소로 향해갔다. 유호성 역시 술이고 나발이고 잠이나 퍼져 자야겠다는 생각에 터덜터덜 그의 뒤를 따라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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