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 지도자가 바뀌면, 외교의 지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늘 주목한다. 특히 북한 같은 왕조 체제에서 지도자의 사망을 계기로 벌어지는 조문외교는 새로운 체제의 초기 외교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조의 표명조차 미국을 따라 하는 등 공동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중국과는 아무런 교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같은 민족을 내세우는 한국에 북한에 대한 지분을 조금이라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국을 사태 수습의 당사자로 인정할 필요가 없고, 연락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코가 석자인 북한이 서먹한 남한과 말을 섞을 여유도, 의지도 느끼지 않는 사이 불과 100여일 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멀고 먼 시베리아로 날아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날 정도로 성의를 보인 러시아는 북ㆍ러 밀착도를 키우고 있다.

우리와 보조를 맞추던 미국은 어느새 김정은 체제를 인정해 버렸고, 일본은 ‘주민에 대한 위로’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애도’를 표시함으로써 미ㆍ일 모두 우리보다 한 발짝 북한에 더 접근했다.

김 위원장 사망 직후 보인 이 같은 6개국의 행보는 당연히 향후 6자회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 사망 직전 미국과 북한은 식량을 주는 대신, 우라늄농축 프로그램 잠정 중단을 약속하는 실무 합의를 했고, 원래 이번주 베이징에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ㆍ미 간 3차 고위급 회담을 열기로 돼 있었다.

일단 중국의 주도권 잡아가기를 경계한 미국측이 김 위원장 사망직후 뉴욕에서 회동을 가짐으로써 6자회담의 불씨는 이어졌다. 본격 대화 분위기는 장례 및 체제 정비 정국만 지나면 내년 초 이어질 전망이다.북ㆍ미 접촉이 마무리되면 6자회담도 열릴 텐데, 북핵 위협의 당사국이자 같은 민족인 한국의 입지는 기조의 대전환이 없다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 생전과 달라진 것은 중국 영향력의 확대다. 1994년 제네바 합의도 그랬거니와 2005년 9ㆍ19 선언,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 등 지금까지 6자회담의 성과가 있을 때 늘 북ㆍ미 간 사전 조율이 본게임인 6자회담의 색깔을 좌우했지만, 앞으로는 북ㆍ미 대화 못지않게 북ㆍ중 간 조율 결과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주도권이 당장 약화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북ㆍ미 간 대화에 중국이 늘 관여하는 북ㆍ미ㆍ중 사전 조율 시스템이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변수도 만만찮다. 러시아는 6자회담 때마다 중간자 역할을 하며 단골로 중재안을 내놨다. 이 때문에 과거 6자회담 구도는 3(한ㆍ미ㆍ일) 대 2(북ㆍ중) 대 1(러시아)이었다. 하지만 북ㆍ러 양측은 김 위원장 사망 넉 달 전 냉전시대 수준으로 ‘전통적 우호관계의 복원’을 선언했다. 토론구도가 3대3 냉전시대와 똑같이 회귀한 것이다.

과거엔 의장국으로서 대놓고 북한 편을 들지 못했던 중국은 ‘친하면서도 어딘가 껄끄러웠던’ 김정일 체제 때와는 달리, 앞으로는 대북 영향력 강화를 위해 북한을 더욱 적극적으로 대변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달라진 동북아 6자구도 속에 어떻게 목소리를 낼지 주판을 한참 두드려야 한다.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 한ㆍ중 관계, 한ㆍ미 관계가 선순환구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북 적대감을 줄이고 대중국 소원함을 털어버리는 묘책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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