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4회> 열망을 품은 도전 27

설사병에 걸리거나 배탈이 나서 석 달 열흘 동안 밍밍한 흰죽만 먹은 사람일수록 완쾌되는 즉시 고추장에 범벅이 된 비빔밥을 찾을 것이다. 인지상정, 지렁이보다도 못한 무골호인에게 느꼈던 감정이 사라지자 오히려 목숨을 내던진 채로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가 그리워지더라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한승우의 무골 기질에 신물을 느낀 유한솜은 문득 발랑스 랠리 서비스 파크 앞길에서 마주쳤던 그 남자를 떠올리고야 말았다. 그 남자… 자기를 유민그룹 공주님이라 불러주던 그 남자… 불에 그을은 똥차를 타고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던 그 남자… 베트남 연안의 파도에 휩쓸린 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크루즈 선 갑판에서 검은 바다로 몸을 날리던 그 남자…

“지금 야심한 시각에 어딜 가시려고요?”

유한솜이 그 남자를 먼빛으로나마 만나보기 위해 옷을 챙겨 입자, 어김없이 조 차장이 핸드폰 통화단추를 누르면서 그녀를 막아섰다. 그는 한 팔로 유한솜을 막아 세우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신희영과 직통하는 단축키를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 사우나에 갑니다. 왜요? 조 차장님도 따라오시려고요?”

“여보세요? 회장님? 지금 한솜 양이 사우나에 간다는 군요… 보내드려도 되겠죠? 여자 목욕탕까지 따라붙을 녀석은 없을 테니까요.”

꼰질러 바치든지 말든지, 유한솜은 숙소를 나서서 발랑스 다운타운으로 차를 몰았다. 석 달 동안 장기 임대한 랜터카는 대여료에 비해 성능이 한결 좋았다. 다만 편의사양이 구비되어 있지 않아서 창문을 열 때마다 핸들을 빙글빙글 돌려야 하는 불편함이 흠이었다.

“유민그룹 공주님, 가끔씩이라도 연락 주세요. 시합 날까지 낮이건 밤이건 여기서 연습주행을 하고 있을 테니까…”

권도일… 며칠 전 길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는 짧은 인사를 마친 후에 명함 한 장을 건네주지 않았던가. 왠지 은밀한 기분으로 명함을 받아들던 순간 유한솜의 손끝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물론 그 순간에는 자기 자신의 손끝이 어째서 파르르 떨리고 있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은… 왠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본능…, 혹은 필연을 예감하는 전조가 아니었을까? 손끝을 타고 올라와 심장까지 미세하게 떨려오던 그 까닭은.

란치아스트라토스, 포르셰카레라, 피아트 아바르트스, 르노 터보, 아우디 콰트로, 도요타 첼리카, 스바루임프레자, 미스비시 렌서T, 시트로엥 S… 명함에 적힌 주소지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멀리서도 명차들이 줄지어 파킹되어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머신들은 분명 이번 몬테카를로 랠리에 출전할 특수머신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불에 타다 만 고물 차는 그 명차들 틈에 섞여 쉬고 있지 않았다.

‘기다리자, 기다리다보면 어디선가 그 남자가 차를 몰고 나타나겠지. 그 남자는 아직 잠들어 있지 않을 거야, 확실해.’

얼음판을 차고 달리는 몬테카를로 랠리에는 무려 다섯 구간의 스페셜 스테이지가 있다고 들었다. 첫날 어둠의 스테이지로 시작되는 그 끔찍한 구간은 고통의 스테이지와 인내의 스테이지를 거쳐 망각의 스테이지, 좌절의 스테이지를 통과하게 되어있다. 끝없이 무한질주를 하는 중에 그 많은 험로를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스테이지는 어째서 좌절을 겪는 구간으로 마감하게 되어 있을까. 무릇 좌절을 맛본 자만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려 했던 것일까?

유한솜은 마치 좌절의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선수처럼 막연한 심정으로 그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오로지 그 남자의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쓰고 있을 뿐이었다. 며칠 전, 한승우도 그 남자를 알아보고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가. 하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뭐였더라 그 남자의 이름이…

‘D.I. Kwon’

유한솜은 손바닥 안에 쥐고 있던 명함을 다시 확인했다. D.I… 아, 그렇지. 도일… 권도일 전무라고 했지… 그녀는 문득 떠오른 그의 이름을 자기도 모르게 외쳐 불렀다. 그래서일까? 그 부름에 대답이라도 하기 위해서 일까? 그 순간 저 멀리서 헤드라이트 불빛을 내비치며 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분명 권도일이 모는 고물 차임에 분명했다.

알리바바 더보기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