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인정사정 볼 것 없다 (38)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도종호 상무님. 혹시 몬테카를로 랠리라고 들어 봤습니까?”
“그럼요, 전 세계에서 가장 전통 깊고 유명한 랠리라고들 하지요. 아마 동절기에 열리는 자동차 경주로는 지존일 겁니다.”
“지존? 거 참 멋진 말이로군요. 우리 이번 기회에 몬테카를로 랠리가 얼마나 처절한지 구경 좀 하지 않으시렵니까?”
“정말이십니까? 아무렴요, 구경해야지요. 무려 5개국을 관통하는 랠리경기를 목전에 두고 있으니 선행학습을 감행해야지요.”
“그럼 지금 당장 내 방으로 오세요. 자료실에 연락해서 몬테카를로에 관한 자료 좀 몽땅 챙겨서 올려 보내도록 하시고요.”
“물론이지요. 당장 준비해서 올라가겠습니다.”
거성재벌 2세의 전화를 받은 도종호 상무는 즉시 국제 랠리대회 일정표가 적힌 노트를 찾아내어 펼쳐보았다. 내년 1월 19일… 2012년 몬테카를로 랠리는 도로마다 서걱서걱 얼음이 얼어있을 새해 벽두부터 열리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극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국제 자동차 경주의 개막전인 셈이었다.
원래 유럽에는 각 나라마다 국제적인 대규모 랠리가 있어서 제각기 득점을 합계하여 유럽 랠리챔피언을 탄생시키곤 한다. 현재 국제적으로 이름난 랠리를 꼽으라면 한 겨울철에 프랑스 아르데슈에서 모나코 항구까지 달리는 몬테카를로 랠리와 여름철에 알프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알펜랠리를 거론할 수 있다. 또한 동부 아프리카의 황량한 벌판을 무대로 격렬히 전개되는 이스트 아프리칸 사파리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처절한 대회로는 산악지대와 사막을 통과하며 무려 1만 3,000킬로미터 구간을 달리는 파리, 다카르 랠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그 경기에는 죽음의 랠리라는 별명이 항시 따라붙어 있을까.
“이왕이면 우리도 그 유명하다는 몬테카를로 랠리에 직접 참여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비록 꼴찌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향후에 벌어질 5개국 관통 랠리의 예행연습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기자들이 냄새 맡지 못하도록 비밀리에 일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 조금 번거롭습니다만…”
재벌 2세의 방으로 찾아간 도종호 상무는 내친 김에 이렇게 말을 꺼냈다.
“우리 거성자동차가 세계에서 가장 전통 깊고 유명하다는 그 몬테카를로 랠리에 참가하자는 말씀입니까?”
“참가 못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현성애 양이 튜닝한 1974년 산 치타의 성능도 테스트할 겸, 권도일 선수와 김지선 선수의 드라이브 실력도 가늠해볼 겸…”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산 확보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라서 조금 망설여지는군요. 회장님께서는 신형 전기차 생산라인 증설에 소요될 자금을 충당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으시니 더 이상 돈을 내놓으라 할 수도 없고… 자금소요가 만만치 않은 모양입디다.”
“까짓 두어 명이 랠리경기에 참가하는 비용쯤이야 우리에게 납품하는 타이어 회사에서 협찬 받으면 되겠지요. 원래 랠리경기가 타이어 선택에 의해서 승패가 갈리기도 하는 경기이니 말만 잘 하면 협찬을 받아낼 수 있을 겁니다.”
“아니지요. 올해까지는 몬테카를로 랠리에 참가하는 모든 차량에 피델리 타이어를 쓰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피델리 회사의 타이어를 주문하는 일이 급할 거예요. 경비는 내가 마련해 보지요. 어차피 언론에 공개하지 않을 바에야 회장님께는 모든 걸 비밀로 하면 될 테니까요.”
“그렇군요… 어쨌든 이런 쪼잔한 일까지 회장님께 보고드릴 필요가 없지요. 그럼 저는 피델리 타이어를 종류에 따라 주문하고, 에… 또, 유럽 자동차 경주협회에 라이선스 발급 요청부터 해놓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이번 기회에 우리도 그레이스 켈리 왕비의 나라… 모나코로 가봅시다.”
미인의 지존 그레이스 켈리를 떠올리는걸 보니 재벌 2세의 마음도 약간 들뜨는 모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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