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보수세력 재결집 계기
중도쏠림→이념대결 다시 도래
與 ‘영남 텃밭’지나친 맹신땐
자칫 구태정치 역풍 우려도
예상치 않게 싸움판 멍석이 일찌감치 깔려버렸다. 8ㆍ24 주민투표는 강남의 결집 등으로 현실화된 ‘보혁대결’ 구도로 대권싸움 1막의 틀을 세웠다. ‘좌클릭’이 유행처럼 번지던 정치판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이다.
이 대결구도는 구태적이지만, 경쟁 에너지를 키울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모두가 중도로 쏠리면 피아 구분이 어려울 텐데, 쪼개고 갈랐으니 적이 다소 명확해진 것이다. 쪼개고 가르려는 싸움꾼의 본능은 앞으로 동서 지역대결, 계층 갈등을 부채질할 가능성도 있다.
보수에 분배를 덧씌워 중도 쪽 외연을 넓히고자 했던 1위 주자 박근혜는 왼쪽으로 조금 이동했다가 8ㆍ24 국면에서 예전에 서 있던 자리를 돌아보니, 보수라는 텃밭에서 달갑지 않은 자들이 쟁기질을 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동안 단일 대오를 형성하지 못하던 범친이계는 박근혜의 외연 확장 과정에서 발견한 ‘정통보수’의 빈자리를 찾아, 어설프게 ‘분배’라는 남의 옷 얻어입기보다는 본향에서 터 잡는 게 더 손쉬울 것 같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렇듯 오세훈의 주민투표는 정통보수 맹주 전쟁을 초래했다.
무상급식으로 상징되는 복지논쟁에서 박근혜는 가부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그러는 사이 강남은 결집했다. 그 결집은 오세훈을 앞세운 ‘非박근혜’계의 ‘보수층 확인 퍼포먼스’에 부응한 결과였다. 친이계 등은 새 둥지를 얻었고, 박근혜는 옛 둥지 수성과 새 영토 개척이라는 두 개의 짐을 지게 된 것이다. 그 기간이 짧든 길든, 활로 모색을 위한 친박계의 고민과 강남좌파 및 영남지역 개혁파의 위축은 불가피해 보인다.
야권도 보혁 이념대결이 도래했음을 인정한다. 손학규는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은 특권층과 서민, 수도권과 지방으로 나뉘어 갈등에 싸여 있는데, 이념대결을 본격적으로 부추긴 것이 이번 주민투표”라고 말했다. 8ㆍ24 전투에서 외형상 승리를 거뒀지만 구도짜기의 주도권을 여권에 넘긴 것은 중단기적으론 패배다.
이 때문에 야권 통합 또는 연대의 필요성은 이전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하도 노선이 많기에 대통합은 어렵겠지만, 합리적 개혁세력과 선명한 진보그룹으로 나뉜 뒤 양자 연대의 방법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질 전망이다.
문제는 이번에 빚어진 8ㆍ24 보혁대결 프레임이 동서 지역대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영남 유권자는 호남의 2.5배이다. 수도권에서 45 대 55로 지더라도 충청, 제주, 강원에서 30~40%만 얻으면 이긴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 ‘달콤한 유혹’을 여권 일각에서 외면할 리가 없다.
최근 여당 내에서 ‘호남배제론’ 논쟁이 인 것은 새삼 주목된다.
이는 민주당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8ㆍ24 투표는 여당 내 특정 계파에는 ‘1타3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너무 일찍 잡힌 ‘구도’가 어느 순간 부질없어질 가능성도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 따뜻함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시장경제, 사회통합이라는 시대정신을 외면한 채 보혁, 동서 대결구도를 조장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역풍을 맞아 8ㆍ24 주도세력을 낙동강과 양재천에 고립시킬 수도 있다. 8ㆍ24 프레임이 ‘구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여권 일각에서 8ㆍ24 결과를 승리라고 강변하는 것은 오만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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