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4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9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가수 서태지는 벌써 오래 전에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가만히 음미할수록 그 노래가사 속에는 인생이 기막히게 함축되어 있었다.
‘그래, 나이 오십이 넘어서 벌이는 상열지사는 환상을 만족시키는 것일 뿐이야.’
강준호는 이제 막 환희에 차올라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야릇한 신음을 흘리기 시작하는 신희영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귀 언저리에는 아직 ‘오빠~’라고 부르던 그녀의 목소리가 감돌고 있었지만…그는 속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오빠라고? 그거 좋은 말이지. 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다시 여왕으로 복귀하겠지? 환상에서 깨어나면 말짱 도루묵 아니겠어?’
손자병법에 이르길 전쟁은 속임수라고 했다. 그러므로 능하면서도 무능한 듯이 보이게 하고, 가까움은 먼 듯이 보이게 하고, 먼 것은 가까운 듯이 보이게 해야 한다. 이로운 듯이 보이게 하여 유인하고, 혼란시켜 놓고 탈취해야 하며, 상대가 견실하면 방비하고, 상대가 강인하면 피해야 한다.
강준호는 오십 살 넘은 사람들의 사랑도 역시 속임수라고 여겼다. 하물며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위치에 있는 남녀의 사랑이야 오죽할까. 아무리 옷을 훌훌 벗고, 몸에 오일을 바르고, 라벨의 볼레로에 맞추어 상열지사를 벌인다 해도 상대는 결국 적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달콤하지만 무작정 탐하기엔 왠지 두렵다는 뜻이었다.
“강 프로…아니, 오빠! 지금이야, GO!”
신희영의 안달스러운 요구가 계속 이어졌다. 어쩌면 외마디에 가까운 이 요구야말로 현실에서 느끼는 치열함, 혹은 무기력, 바람난 재벌 남편으로부터 느끼는 환멸 따위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는 항변인지도 모른다. 마침 오디오에서는 볼레로가 극치를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관악기와 현악기가 총동원되어 극으로 치닫는 상황…. 이를테면 4두마차를 타고 죽도록 달리면서 3초에 여섯 번씩 GO를 해야만 할 순간이었다.
“그래, 죽자 죽어! 하낫 둘, 학학! 둘둘, 학학!”
강준호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달리자 그녀 역시 온 몸을 비틀며 대항하기 시작했다. 몸에 미끄러운 오일이 발라져 있기 때문인지 가장 부드러운 터치에도 젖가슴의 돌기가 단단하게 살아나곤 했다. 만세 부르듯 위로 들어 올린 그녀의 두 팔은 어깨 위에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기름에 젖은 몸은 사실 아름다울 리가 없었다. 젖가슴은 오랫동안 접시 위에 담겨있던 무스 쇼콜라처럼 탄력을 잃었고, 빈약한 허벅지도 기름에 젖어 번들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강준호는 들고양이처럼 몸을 굽혀가며 그녀의 온 몸을 차례차례 공략하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젖가슴을 한 입 가득 베어 물었을 때엔 풋사과에서 풍기는 것과도 같은 상큼한 향이 번져 나오기도 했다.
“아으, 아으… 아흑!”
그녀의 반응은 이제 거친 외마디 소리일 뿐이었다. 독수리처럼 손톱을 세워 귓가를 간질이다가 등뼈를 훑어가며 할퀴어낼 때마다 그녀는 자지러지듯이 몸을 떨며 침대 시트자락을 움켜쥐곤 했다. 어느새 전갈처럼 변한 그의 혀가 서서히 배꼽 아래로 내려가자 신희영은 두 다리를 뱀처럼 꼬아 그의 허리를 휘어 감기 시작했다.
“신 여사, 나를 위해서…이혼할 수 있소?”
에라, 모르겠다. 그녀가 환상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를 틈타 강준호는 이렇게 질러버렸던 것이다. 어차피 먹기 힘든 감일지언정 수없이 찌르다 보면 단물이라도 흐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지금! 지금 해요, 어서!”
그러나 들은 것인지, 못 들은 것인지 그녀는 허공을 향해 입을 따악 벌리고만 있었다. 역시 강적이었다. 손자병법에 이르길 적은 노엽게 만들어 뒤흔들고, 자기를 비하시켜 저자세로 보여 적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하라고 했다. 방비가 없을 때에 공격하고, 뜻하지 않을 때에 무찌르라고도 했다. 이것이 전쟁에 능한 자가 이기는 방법이라고 했거늘, 문득 이혼하자고 덤빈 것이 실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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