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6회> 날개에 숨긴 칼 16

1970년대에 전 세계를 휩쓸며 젊은이를 매료시켰던 영화 ‘로키’에는 두 명의 권투선수가 등장한다. 한 명은 더 이상 대적할 상대선수가 없는 챔피언 아폴로였고, 다른 한 명은 할렘가의 건달과도 다를 바 없던 무명 선수 로키였다.

여차저차 해서 두 선수는 링 위에서 맞붙게 된다. 챔피언 아폴로의 생각에 그 경기는 어린아이 팔목 비틀기와 다름없었다. 물론 방송사나 신문사의 기자도 한결같이 아폴로의 화끈한 승리를 점치는데, 그에 고무된 아폴로는 자기의 주먹만 믿고 으스대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로키는 어땠을까? 새벽바람에 일어나 날계란 대여섯 개를 깨먹은 뒤에 이를 악물고 계단을 뛰어오른다. 스파링 파트너도 구할 수 없어 쇠고기 저장 창고에서 천정에 매단 쇠갈비를 두드리며 챔피언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영화에 빗대어 보면 유민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레이싱 수업을 받고 있는 유호성은 아폴로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언론플레이가 목적인 거성자동차의 희생양으로서 30년이 넘은 똥차를 몰고 출전해야 할 권도일은 로키와 다를 바 없는 신세였다.

“자, 이것이 30여년 전 우리 회사에서 최초로 생산한 자동차 ‘치타’를 구입한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간혹 주소가 적혀 있기도 하지만 30여년 전 당시의 주소이니 지금도 살고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권 전무님께서는 가급적 이른 시일 내 이 사람들을 찾아서 치타 보유 여부를 확인하세요. 만약에 아직도 치타를 보유한 사람이 있다면 싼 값에 조용히 한 대를 사들이세요.”

“아니 30여년 전 주소만 달랑 들고 이 사람들을 찾아내라고요? 좋습니다. 살아있을지 죽었을지도 모르지만…하여간 찾았다 치자고요. 그 중 한 명이라도 아직까지 치타를 타는 사람이 있을까요? 일 년이 백년처럼 변하는 시대에 30여년 전의 차를 구하느니 호랑이가 피우던 담뱃대를 구하는 편이 더 쉽겠군요.”

“하여간 회장 2세의 명령이니 일주일 내로 구해 오십쇼.”

똥차를 구해오라고 시키는 사람은 거성자동차의 도종호 상무였고, 차라리 호랑이 담뱃대를 구하겠다고 푸념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권도일이었다. 도종호 상무는 명단을 권도일의 코앞에 들이밀고는 바람처럼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일주일 내 무슨 재간으로….”

그들 사이에 찬바람이 이는 까닭은 분명했다. 얼마전이던가 술자리를 마치고 화류계의 악습대로 2차를 감행하던 날, 상열지사 도중에 권도일에게 불려가 브리핑을 한 것에 대한 분풀이였을 것이다. 그날 옷가지를 제대로 차려입은 권도일이 홀딱 벗은 도종호에게 레이싱팀 창단에 대한 브리핑을 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도종호 상무에게서 이런 주문을 받은 직후부터 권도일은 고생길로 들어서야만 했다. 무명의 권투선수 로키가 그랬듯이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키가 새벽바람에 일어나 날계란 대여섯 개를 깨먹은 뒤 훈련을 나섰듯이 도종호는 새벽 댓바람에 인절미 한 개를 냉수와 더불어 먹고 치타를 찾아 시골길로 나섰던 것이다.

“지금쯤 권도일…그 자식, 촌구석 헤매면서 고생깨나 하겠지요?”

“자승자박이지요. 그날 건방만 떨지 않았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치타 한 대를 구해줬을텐데…쌤통입니다. 그날 생각만 하면 아직도 머리통에서 김이 나요. 제까짓 게 뭐라고 우리에게 브리핑을 받습니까?”

“글쎄 말예요. 우리도 제정신이 아니었지, 어쩌자고 아랫도리에 수건 한 장 달랑 걸치고 그 작자에게 브리핑을 했을까요? 허! 쪽 팔려라.”

둘이 마주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은 바로 도종호 상무와 로비스트 송달민이었다. 그들은 거성자동차에서 최초로 생산한 치타가 얌전히 보관되어 있는 장소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순순히 권도일에게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젠가 그 자식이 홀딱 벗은 채로 통사정을 하게 만듭시다. 그런 꼴을 내 눈으로 본 후에야 치타가 보관된 곳을 알려주자고요.”

“이를 데 있습니까? 백번 찬성입니다.”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담배를 나눠 피우며 동지애를 다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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