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회> 죽음의 계곡 7
무려 5개국을 관통하는 랠리 대장정을 펼치게 될 것이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보도되자 유민 회장은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그러던 차에 또 다른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그 역시 입이 벌어지도록 신나는 소식이었다.
“뭐야? 거성자동차가 블루아우토의 백기사 노릇을 포기했다고?”
“그렇습니다. 그토록 거머리처럼 달라붙더니 결국 우리에게 백기를 든 셈입니다.”
“블루아우토 주식 시세는 어때?”
“벌써 오전 장에 하한가를 기록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이런 상태라면 사흘 연속 하한가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입니다.”
“그럼 돈 되는 대로 주식을 사들여!”
“그렇지만 회장님, 현재 자금사정이…”
“잔소리가 많아. 자넨 그게 탈이야. 자네 직분과 직책이 뭐야? 자금담당 전무면 그 정도 푼돈쯤이야 알아서 조달해야지.”
유민 회장은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이제 운이 트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향후 대선 결과에 따라 독수리 날개를 등에 달수도 있을 터, 새로운 힘을 얻고 새로운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니 무언들 못할까.
세상사 새옹지마 아니겠는가. 넘어져서도 오히려 땅에 떨어진 금덩이를 주울 수도 있는 법… 유민 회장은 앞날의 인생이 훤히 밝아오는 느낌이었다. 다만 어려움에 처한 단기간의 자금흐름만 원활히 해결하면 만사 오케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채찍을 감아쥐어야 할 것이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블루아우토는 우리가 인수합니다. 아울러 자동차 사업의 시작과 때를 맞춰 벌이는 랠리경기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겁니다. 중국, 몽골, 북한, 일본을 가로질러 달리며 우리의 새 사업을 만방에 알리는 일이니 의미가 크지요.”
이렇게 일장 연설을 마친 유민 회장은 책상서랍을 뒤져 코로나 급 시가 한 자루를 꺼내어 물었다. 기분이 극도로 고조되어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러나 허공을 향해 담배연기로 도너츠를 만들던 그는 엇 뜨거워라! 하고 자세를 고쳐 앉아야만 했다. 언젠가 블루아우토의 권도일 전무와 남산자락을 거닐며, 그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내주겠노라고 했던 약속이 떠오른 때문이었다.
‘주가가 똥값이 되었는데 미쳤다고 그 놈에게 경영권을 줘?’
이런 경우를 빗대어 요즘 젊은이들은 ‘쌩 깐다’고 하던가? 하여간 유민 회장이 권도일 전무와의 약속을 쌩 까려고 하는 이유는 아깝기 때문이었다. 블루아우토의 주가가 이토록 하락할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회유할 필요도 없었는데… 차라리 공개매수를 선언했을 당시의 심정으로 융단폭격을 감행했어야 했는데….
‘하긴 뭐 서약서를 쓴 것도 아니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한 것도 아니잖아?’
그는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며 스스로 각오를 다져나갔다. 무를 자를 때는 썩뚝! 소리가 나도록 잘라야 멋진 법이다. 가뜩이나 그의 애비 권일주에 대한 감정도 미진하게 남아있는 터에 공연히 그 아들에게 경영권을 나눠줄 필요가 있을까.
“이봐, 앞으로 이 작자들에게 전화 오면 무조건 없다고 해!”
권일주, 권도일… 유민 회장은 A4 용지 서너 장을 꺼내들더니 붉은색 사인펜으로 커다랗게 두 사람의 이름을 써 넣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비서실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서 마치 현상수배범 벽보를 붙이듯, 비서 아가씨들의 책상 옆에 세워져 있는 파티션에 척척 붙여놓는 것이 아닌가.
“하여간 ‘권’ 자만 들리면 끊어버리라고. 이놈들 이름은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어.”
이를 테면 그는 마음을 바꿔 무자비한 전쟁을 택한 셈이었다. 게다가 이처럼 냉혹하게 돌아설 줄 아는 자기 자신의 결단력에 대해 무척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