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훈 사회부장 <@hamcho3> 지난해 12월19일 대학교수들은 2010년을 마무리하는 사자성어로 ‘장두노미(藏頭露尾)’를 선정했다.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낸 모습’을 가르킨다. 적당히 치장은 했으나 난맥상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일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까칠한 사자성어는 지난해만이 아니었다. 교수들은 교수신문의 2009년 설문에 ‘방기곡경(旁岐曲逕)’을 그해 사자성어로 꼽았다. ‘일을 바르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 억지로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사회 지식인들이 2009년 한차례 경고를 했음에도 정책결정자와 위정자들은 속보이는 꼼수를 부리는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치지 않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지난해 12월30일 이명박 대통령은 새해의 좌표를 제시하는 사자성어로 ‘일기가성(一氣呵成)’을 내놓았다.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미루지 않고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2009-2010년 벌어진 수많은 정부기관, 정치권의 의사결정 과정을 지켜보던 지식인들이 ‘방기곡경’, ‘장두노미’라고 묘사할 일들은 참으로 많았다. 민간인 불법사찰, 날치기 예산파동속 형님예산의 건재, 대통령 측근 연루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부실 수사, 친서민을 외치면서도 서민복지 후퇴, 기업 군기잡기, 안보태세 공백속 사후약방문격 ‘말로만의 안보’ 등 누구든 한두마디씩 할 만큼 헤아리기 어렵다.
방송사업자 선정은 2010년 장두노미와 방기곡경의 대미를 장식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2월31일 자격이 없는 것으로 법조계의 유권해석이 나오는 의료사업자의 지분참여를 용인했고, 기준없는 중복투자 규제라는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면서 ‘입맛’에 맞게 사업자 선정을 관철시켰다.
의료기관의 영리활동이 허용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을지병원의 지분투자를 받은 연합뉴스를 보도채널로 선정했다. 엄연히 다른 회사인데 회사 사주가 형제지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 한곳의 투자를 받은 HTV는 ‘중복투자 금지’라는 묘한 잣대때문에 분루를 삼켰고, 주관성이 가미된 투명하지 못한 기준속에 서울신문과 머니투데이 등도 고배를 마셔야 했다.
대통령의 사자성어 ‘일기가성’을 정부기관들이 기계적으로 받아들인 탓일까. 방통위는 2010년 마지막날 하루남은 기회가 주어졌을때 뜻한 바를 이뤄내고야 말았다.
종편은 차치하고, 탈락자가 저마다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보도채널 선정과정을 보자. 방통위는 연합뉴스의 을지병원 투자를 적법하다고 봤다. 지분투자는 영리행위라는 것은 법조인, 경제인의 공통된 견해다. 경실련도 성명을 내고 “의료법인의 방송사업 출자 허용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라며, “이번 보도채널 사업자 선정 결과를 그대로 용인한다면 앞으로 의료법인과 같은 비영리법인을 얼마든지 탈법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의 답변도 이해하기 어렵다. 영리법인 허용문제를 놓고 정부부처간 갈등이 있을때 의료의 공공성을 들어 ‘불가’입장을 고수했던 보건복지부인데, 진장관은 4일 헤럴드경제기자와 만나 “을지병원 측에서 (법률적인 부분에 대해) 다 스크린 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른바 최종 ‘스크린(검토 및 판단)’의 주체는 복지부인데, 이해당사자에게 결정을 맡긴듯한 뉘앙스다. 진 장관은 배석한 참모가 “자문 변호사 등을 통해 검토중”이라고 조언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경실련은 병원정관에도 없는 지분투자와 관련, “복지부가 을지병원의 정관변경을 승인해 줄 경우 어떠한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통위는 종편인 jTBC에 투자한 대구도시가스와 HTV에 투자약정한 대성지주가 법적으로 별개회사인데도 두 회사 실질경영주끼리 형제지간이라는 이유를 들어 수십점을 깎았다. 이 감점만 없어도 HTV는 방송사업 진출에 별 문제가 없었다. 결국 연간 수백억원의 정부지원금을 받는 연합뉴스가 현정권으로서는 상대하기 편하다는 ‘법외 잣대’가 작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지울수 없다.
속보이는 짓을 국민은 다 안다. 여론조사와 실제표심이 10~20%포인트 차이 났던 지난 6월 지방선거때의 패배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정부기관과 여권은 이대통령 집권후반기를 맞아 얽힌 실타래를 풀면서 ‘성공한 정권’의 대미를 만들어가야 한다. 재임은 짧고 평가는 길다. 우리는 5년을 ‘역사’로 부르지 않는다.
abc@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