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EOD 사유 발생에 담보 내어준 롯데물산

계열사 부동산 동원 사례는 ‘롯데건설’ 때도 등장

신동빈 회장 ‘매각’ 말했지만, 유동성 선택지 ‘두둑’

롯데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롯데그룹이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 세계 화학업 다운사이클에 내수 침체까지 겹치며 그룹 중축인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호텔롯데, 롯데쇼핑 등이 줄줄이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연초 부진한 사업을 매각하겠다는 깜짝 발언도 했으나 자본시장은 롯데의 부동산 자산에 눈독들이는 모습이다. 롯데물산이 가진 롯데월드타워가 유동성 위기 진화 작업에 동원돼 눈길을 끈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내달 19일 롯데케미칼은 사채권자 집회를 앞두고 있다. 14건의 무보증 회사채에 대해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해 이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다. 투자자에게 기한이익 유지 조건으로 약속했던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이자비용 배수 5배 이상’을 지키지 못한 탓이다.

문제가 발생한 채무 규모는 2조450억원이다. 다만 롯데케미칼이 채권자를 설득하지 못해 EOD가 선언될 경우 미상환 회사채 전액인 2조2950억원을 즉시 갚아야 할 수도 있다. 특약이 없는 사채 역시 다른 사채의 기한이익이 상실되면 동일하게 EOD 사유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롯데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계열사 ‘부동산’ 자산을 활용할 예정이다. 롯데물산으로부터 6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받기로 했다. 이를 통해 은행권으로부터 지급보증을 받아 원리금 상환 가능성을 높여 사채권자를 설득한다는 구상이다.

위기에 처한 롯데그룹이 부동산을 활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초 롯데건설은 유동성이 마르자 부동산 담보 대출 카드를 꺼냈다. 당시 롯데건설은 메리츠금융그룹과 계열사로부터 각각 9000억원, 6000억원씩 총 1조5000억원의 자금을 수혈 받았다. 올해도 금융권에서 1조6000억원, 계열사로부터 7000억원을 대여했다. 롯데건설이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한 덕분에 자금 조달이 가능했다.

부동산은 조달 카드뿐 아니라 재무구조 개선용으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롯데쇼핑은 실적 저하로 이익잉여금이 쌓이지 않자 부동산 자산재평가를 예고했다. 7조6000억원 규모로 예상되는 부동산 자산의 시가를 재무제표에 반영해 자기자본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자산재평가에 따른 차익은 기타포괄손익으로 회계처리되는 만큼 자기자본을 끌어올릴 수 있다.

롯데의 부동산 자산은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모습이다. 이 외에도 롯데칠성음료의 서초동 부지 등도 시장에서 눈여겨보는 자산으로 꼽힌다. 최근 그룹은 전체 부동산 가치가 10월 평가기준 56조원에 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롯데그룹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사업법인 등을 매각할지도 관심거리다. 신동빈 회장은 연초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바이오 테크놀로지, 메타버스, 수소에너지, 소재 등 성장 산업으로 사업을 교체하고 부진한 사업은 매각하겠다”라고 밝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현재 롯데렌탈이 매각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으나 부동산으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사업법인을 매각할 유인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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