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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 브렉시트, 모든 것은 ‘말 한마디’와 ‘로더럼 사건’에서 시작됐다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작은 사건 하나가 국제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공약으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내놓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자신의 말 한마디로 1ㆍ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일궈놓은 평화체제인 유럽연합(EU)을 위기로 몰아넣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초래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내 인생에 있어 영국 정부의 가장 무책임한 행보는 국민투표”라며 캐머런 총리를 질타했다.

캐머런 총리의 2013년 브렉시트 투표안 공약은 영국의 기성 정당(보수당과 노동당)을 위협하는 극우정당 영국독립당(UKIP)과 독립을 시도하는 스코틀랜드 민족당(SNP)의 기세를 꺾고 일자리 부족과 양극화로 뿔난 영국민들을 달래주기 위한 꼼수에 불과했다. 

<사진1> 24일 국민투표 결과,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사퇴 의사를 밝히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반(反)EU와 반이민을 내세운 UKIP는 장기화된 영국 경기침체와 양극화 속에서 영국중하층 노동자들의 높은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2015년 총선에서 UKIP는소선구제에 따라 의석을 1석 차지하는 데 그쳤지만, 전체 득표율은 12.7%로, 스코틀랜드 의석 59석 중 56석을 차지한 SNP보다 3배가 높다. SNP의 전체 득표율은 4.7%에 그쳤다. ‘UKIP 붐’을 저지하려던 캐머론 총리는 브레시트 투표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총선에서 승리하자 브렉시트 얘기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확실히 해두겠다고 FT에 밝혔다.

하지만 불타오른 반이민정서를 캐머런 총리가 막을 수는 없었다. 영국의 무슬림 이민자들은 지난 2월 테러를 겪은 벨기에와 마찬가지로 현지사회와 동화되지 못한 채 고립된 이들이 많았다. 

선이나 데일리 메일, 익스프레스 지와 같은 타블로이드 지들은 “영국 무슬림의 절반이 ISIS를 지지하고 있다”는 등의 선동성 기사로 무슬림 이민자들의 입지를 악화시키고 인종차별을 심화시켰다. 실제로 영국 가디언지는 2013년 기준 영국의 인종차별 지수가 2000년과 비교해 25%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로더럼 성착취 사건’이 반이민 및 반난민 정서를 극대화시켰다는 것이다. 로더럼 사건은 반난민 정서를 부추기고 영국민들이 브렉시트를 단순히 ‘EU로부터 ‘이동의 제한’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는 작업’으로 간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려 1400명의 영국 백인 소녀들이 로더럼에 거주하는 파키스탄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1997년부터 2013년까지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당해온 사실이 2014년 밝혀졌다.  

로더럼의 인구 26만 명 중 파키스탄 인구는 8000명에 그치지만 현시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채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로더럼의 일부 파키스탄 무슬림들은 조직적인 범죄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진2> 24일 국민투표를 앞두고 “영국의 주권을 되찾자”며 영국민들에 브렉시트 지지를 호소한 영국 독립당(UKIP)


반이민파들이 거리로 나오는 등 대대적인 난민 반대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민자 동화’라는 어려운 길보다 ‘이민ㆍ난민 추방’이라는 쉬운 길을 택한 결과였다. 난민들에 반감을 갖게 된 영국민들은 로더럼 거리로 나와 반이민ㆍ반EU를 주장하는 UKIP를 홍보하고 나섰다. “우리가 난민을 무조건 수용하고 있는 것은 EU 때문”이라는 UKIP의 논리는 로더럼 사건으로 분노한 영국민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브렉시트가 결정되자마자 “우리는 EU와의 자유무역을 원한다”며 “영국인들은 EU와의 정치적 통합만을 꺼린 것”이라고 밝힌 네일 해밀턴 UKIP 전국집행위원의 발언은 EU이탈파들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장의 정치경제적 여파보다도 이민자 배척 및 영국의 주권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 하나가 유럽 대륙을 불바다로 몰아넣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의 민족주의 단체 ‘검은 손’의 일원에 의해 총살을 당했다. 분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내정간섭을 주장하다가 선전포고를 했다. 세르비아와 동맹관계에 있던 러시아는 군사를 움직였고 오스트리아와 동맹관계에 있던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후 프랑스까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된 것이 1차 세계대전이다.

극우파들의 주장처럼 브렉시트는 단순히 영국의 주권회복을 위한 움직임일 수도 있다. 하지만 EU 탈퇴 결정으로 하루 만에 전 세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2조 800억 달러(약 2440조 원)이 증발하고 ‘프렉시트’와 ‘넥시트’ 등 다른 EU회원국에서도 탈퇴 여론이 부상하면서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1ㆍ2차 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이 제도적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구축한 EU라는 평화체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브렉시트가 21세기 세계질서를 전환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좋든 나쁘든 캐머런 총리의 말 한마디와 로더럼에서 발생한 희대의 성착취 사건은 오늘날의 혼란을 초래했다. 전문가들은 탈퇴과정에서 EU의 분열을 막거나 국제사회 공조체제를 재차 다지는 것만이 향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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