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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대권리금 없습니다”…콧대 확 낮춘 압구정 로데오거리
젠트리피케이션·높은 공실률…
임대료 낮추기로 상권에 ‘활력’
골목안 거품↓…대로변은 여전



#. 압구정 로데오역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실평(전용면적+확장) 33㎡(10평) 규모의 카페는 최근 주인이 바뀌었다. 거래된 금액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200만원. 지난해 2억~3억원에 달하던 권리금은 사라졌다. 1년새 보증금은 3000만원, 월세는 70만원 가량 내렸다. 새 임차인은 가로수길에서 작은 의류 매장을 운영하다 압구정으로 터를 옮겼다.

지난 17일 찾은 로데오거리엔 활기가 느껴졌다. 몇 달 전까지 ‘임대’ 안내문이 붙었던 상가들은 새롭게 단장해 손님을 맞고 있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자 젊은이들은 음식점과 카페에 몰렸다. 카페와 의류매장이 모인 언주로 도로변에 즐비한 외제차에선 고급 상권의 자존심이 엿보였다.

압구정 로데오거리가 달라졌다. 높은 임대료는 골목을 시작으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 권리금이 사라진 곳도 있다. 매물은 온ㆍ오프라인에 많지만, 실제 거래는 드문 편이다.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과 높은 공실률로 몸살을 앓았던 압구정 로데오거리가 달라졌다. 긴 불황과 공실에 부담을 느낀 임대인들이 몸을 낮췄다. 거래는 드물지만 거리의 표정은 천천히 변화 중이다.

로데오거리 인근 H공인 관계자는 “공실에도 아랑곳 않던 일부 집주인들이 적극적으로 변했다”며 “지난해부터 로데오거리 안쪽을 중심으로 꾸준히 임대료가 하락하자 문의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몸을 낮춘 임대인들의 조용한 유인책은 현재 진행형이다. 수면 아래 형성됐던 ‘그들만의 시세’도 한풀 꺾였다. 

로데오거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김 모(46)씨는 “2년 전 로데오거리 도로변에서 권리금 2억에 월세 300만원으로 장사를 시작했지만 골목으로 터를 옮기자 부담이 1/4로 줄었다”며 “여전히 자존심이 높은 곳으로 비춰지지만 최근엔 임대인에 따라 시세는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본 임대료의 겉과 속은 달랐다. 도로변에선 여전히 ‘콧대 높은’ 상권이지만 골목 내부에선 과대포장된 가격표를 떼어낸 착한 민낯을 드러냈다. 인근 B공인 관계자는 “압구정 도로변에 있는 상가들의 몸값이 크게 높아 평균 임대료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골목 내 상가 임대료 거품은 많이 사라졌고, 층별ㆍ규모별로 권리금이 사라지는 곳도 늘고 있다”고 했다.


18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로데오거리 일대 임대료는 올해 1분기 6.6% 올랐다. 신사(3.8%) 삼성역(6.7%)보다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 계약면적 기준 ㎡당 보증금은 86만원 선으로 신사역(94만원)보다 낮았지만 삼성역(47만원)보다 크게 높았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점포라인이 조사한 압구정 임대료 추이를 살펴보면 보증금은 2013년 4500만원(46.28㎡ 기준)에서 2016년 2000만원(33.05㎡ 기준)으로 감소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권리금이다. 같은 기간 면적당 권리금은 각각 9500만원에서 1250만원으로 크게 낮아졌다. 면적(㎡)으로 환산하면 4년새 보증금과 월세는 각각 37만원, 1만원 가량이 줄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계속된 불황으로 입지에 대한 기대치가 하락하면서 임대인의 부담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권 이사는 “수요가 줄면 수익도 줄어든다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거스르긴 힘들었을 것”이라며 “월세와 권리금이 하락하고 있는 현상은 압구정뿐만 아니라 홍대 등에서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변화는 가로수길의 높은 임대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초기 압구정의 높은 임대료에 영세상인들이 가로수길을 택했으나 최근엔 다시 압구정으로 돌아오는 ‘역(逆)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대형 패션라이프스타일 전문점 개장과 관광객 증가로 인한 임대료 상승으로 소규모 점포를 다시 압구정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현장 관계자들은 아직 거래로 이어지진 않지만 분위기는 꾸준하다고 입을 모았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수익형의 특성상 공실이 많아지면 임대료가 내려가야 하는데, 시세 형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정이 쉽지 않은 문제”라며 “가로수길에 대한 조정은 없지만, 최근 높아진 임대료 탓에 점차 공실이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임대인들이 공실을 없애기 위한 대책과 공생(共生)을 도모하는 지자체의 노력이 갖춰져야 상권의 생명력이 길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찬수 기자/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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