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년 전 오늘(6월 20일), 프랑스는 치열했다. 베르사유 궁전내 테니스코트에 모인 평민들은 이른바 ‘테니스코트의 서약’이란 걸 했다.

“국민의회(국회)는 헌법을 제정하고 사회의 질서를 회복시킬 때까지 결코 해산하지 않는다”

현재 시선으론 서약인가 싶게 밋밋하다. 그러나 당시가 왕정이란 걸 감안하면, 목숨을 걸고 감행한 맹세다. 평민들은 귀족ㆍ성직자만의 특권에 몸서리쳤다. 평민만의 회의장도 폐쇄당했다. 혜안이라곤 없어 이슈에 쫓기던 국왕 루이 16세의 동생 아르투아 백작 등이 자신들의 체제가 뒤집힐까 두려워 집단행동을 틀어막은 거다.

평민들은 그러나 테니스장에 모여 결기를 보였다. 그들은 서약에 앞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라는 걸 만들고, 특권 깨부수기의 분위기를 달궜다. 그들이 지상과제로 삼은 건 헌법 제정이었다. 의회정치를 하는 영국, 미국 독립전쟁의 영향이 컸다. 시민의 권리를 명문화하고, 평등한 세상을 규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특권층은 부를 축적하고 면세혜택까지 누렸지만, 시민 계층은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불합리를 바로잡으려는 갈망이었다.

프랑스혁명의 단초가 됐던 이 ‘테니스코트의 서약’은 20일쯤 뒤 헌법제정국민의회라는 이름의 최고입법기관을 통해 프랑스 헌법 제정에 착수하기에 이른다. 말 그대로 민란(民亂)이고, 상당 기간 동안 피바람을 몰고 왔지만 민주(民主)가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끔 한다.

영남권인지, 동남권인지 경계가 모호한 곳에 앉혀질 공항을 둘러싸고 민란이라는 단어가 횡행한다. ‘테니스코트의 서약’을 했던 시대의 사람들이 볼 땐 ‘먹고 살만하니 배가 불러 저런다’라는 지청구 듣기 딱이다. 공항말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 사회에 널렸다.

홍성원 기자/


ho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