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K팝과 한국어는 제게 희망을 심어줬답니다. 제가 한국어를 배우면서 얻은 위안과 보람을 누군가를 돕는데 쓰고 싶어요.”

필리핀 세부 타클로반 지역 출신의 바끌레아 앤(Baclea-an) 양은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녔다면 대학생 나이쯤 됐다.

그녀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주 필리핀 한국문화원 주최로 마닐라 소재 아테네오 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에 오르자 감격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선천성 심장병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자신의 지난 시절이 주마등 처럼 스쳐갔기 때문이다.

▶“위로를 준 한국어, K팝을 다른 사람 돕는데 쓰겠다” 바끌레아 앤은 “선천성 심장병을 앓아 어릴 때부터 병원 신세를 지며 삶에 희망이 없었으나, 병실에서 한국 드라마와 K팝을 들으며 삶에 대한 위안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공부했다. 2013년 11월 태풍 하이옌으로 인해 타클로반 지역에 수만 명의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하게 되었을 때, 우리집도 폐허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면서 지난날을 회고했다.

그녀는 K팝과 한국어가 자신에게 준 위안을 조금이라도 타인에게 나누고자 했다. 하이옌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해 한국의 아라우 부대가 타클로반에 1년간 주둔하게 되었을때 바끌레아 앤은 아라우 부대를 찾아가 한국어-따갈로그어(필리핀어) 통역을 자처했다. 앤 양은 아라우 부대와 피해 복구활동을 같이 하면서 많은 보람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한국어를 더욱 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전했다.

바끌레아 앤은 한국어 교사가 되려는 희망을 품고 현재는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해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3등 했다가 재도전끝에 정상에 올랐다.

▶“외롭던 나에게 긍정의 힘을 준 한국문화” 2등을 수상한 크리스틴 디존(Christine Dizon)양은 “2살 때 해외로 나간 어머니와 6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해 어린 시절을 혼자 보내게 되면서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으나,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디존 역시 마닐라에 있는 필리핀 국제대학 입학 이후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면서 삶이 더욱 긍정적으로 변했고,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녀는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이다.

[이 사람] “한국, 고마워요~” 필리핀 사람들의 고백…’태후‘ 주제곡 열창도

주 필리핀 문화원이 주최하는 한국어말하기 대회(Korean Speech Contest)는 이번이 5회째이다. 6개 지역 63명의 참가자가 지원했다가 예선을 거쳐 11명이 본선에 올랐으며, 바끌레아 앤 양, 크리스틴 디존에 이어, 한국 교환학생 출신으로 ’안중근 의사‘의 교훈과 자신의 경험을 연결지어 스피치를 했던 마닐라 아테네오대학 재학생 재닌 라다란((Janine Laddaran)이 3위를 차지했다.

▶남자 대학생 중창단 태양의 후예 주제곡 열창 이밖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슬픔에 빠져 3개월간 방에서 나오지 않으며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웠다는 다바오 출신의 14살 중학생 리나 양, ▷한국에 머물 때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姓)인 ’아줌마‘가 있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소개하며, 고국에 돌아온 뒤 자신이 사는 동네 바기오에 ‘아줌마 클럽’을 만들었다는 필리핀 아줌마 레이첼씨, ▷오래전 한국에서 1년간 일하며 동네 아줌마들에게 한국어를 배운 이야기를 소개한 팜팡가 출신의 46살 안토니오 씨 등이 자신의 독특한 스토리와 한국어 기량을 뽐냈다.

한때 한국과 사돈 나라로 불리기도 했던 필리핀인들의 ’한국 사랑‘ 고백에, 200여명의 방청객 중 몇몇 한국인들은 황송해 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1등 수상자인 바끌레아 앤양은 상금 3만 페소(75만원가량)와 한국관광공사 마닐라 지사와 경희대학교에서 후원하는 한국어 연수(6박 7일, Fun Korean Language Program in Kyunghee University) 프로그램을 부상으로 받았다.

이날 아테네오대학교 남학생의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주제곡 열창, 2014년도 피노이 케이팝 스타의 우승자인 진 카일리(Jean Kiley)의 특별공연 등이 선보여, 대회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 필리핀 주요 6개지역으로 확대 이번 대회 장소를 제공한 아테네오대 사회과학대학 알바다(Aldaba) 학장은 “아테네오대에서 한국어 수업(레벨 1~4)을 개설해 약 150명 이상의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으며, 그중 30명 이상이 한국어를 부전공으로 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아테네오대에서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개최됨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2012년에 처음 시작한 이래로 마닐라에서만 개최해 오다가, 2015년에는 마닐라, 세부, 다바오, 일로일로 등 4개 지역으로 확대 시행했다. 올해는 필리핀 기술교육개발청(TESDA), 각 지역별 한인회, 아테네오 대학교와 공동으로, 마닐라, 세부, 다바오, 일로일로, 바기오, 팜팡가 등 6개 지역에서 예선을 진행(4.23)했고, 예선을 거친 참가자들이 마닐라에서 본선을 가졌다.

오충석 문화원장은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통해 필리핀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가 더욱 확대 전파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