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열한 살 원기(11)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작고 가느다란 아이의 몸엔 이미 노년의 그림자가 짙다. “엄마, 난 시간이 천천히 가면 좋겠어.” 말갛게 웃는 얼굴은 탄성을 잃어 주름이 깊이 패였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확인된 소아 조로증 환자. 400만~800만 분의 1의 확률로 발병한다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소년이다. 원기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겨우 6년. ‘시간을 달리는 소년’(5월 23일 방송)의 생체 나이는 65세다.
“처음엔 그 가족의 웃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황당했어요.”(조성현 PD) 원기의 가족이 죽음을 예약해둔 아이의 삶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아이가 언제 우리 곁을 떠난다 해도 웃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편집하면서 많이 울었어요.”(조성현 PD)
다시 오월, ‘사랑’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로 11년째다. ‘휴먼다큐 사랑’은 누구나의 가슴을 두드릴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해마다 안방을 찾고 있는 MBC의 대표 다큐멘터리다.
원기네 이야기와 함께 ‘휴먼다큐 사랑 2016’은 5월 2일부터 매주 한 편씩 다섯 가족의 이야기로 안방을 찾는다. 40년째 별거 생활 중인 ‘엄앵란과 신성일’(2일 밤 11시10분), 치매를 앓는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남편의 ‘러브 미 텐더’(9일 밤 11시10분), 탈북자 엄마가 입양 보낸 딸을 찾는 ‘내 딸, 미향이’(16일 밤 11시 10분), 25년 만에 재회한 쌍둥이의 ‘사랑하는 엄마에게’(30일 밤 11시10분)다. ’내 딸 미향이‘는 제작진이 무려 3년에 걸쳐 카메라에 담아낸 이야기다. 역대 최장 촬영기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탈북 이후 중국에서 숨어 지내다 딸 미향이가 스위스로 입양된 과정, 현지생활 등을 촘촘히 담아냈다.
‘휴먼다큐 사랑’은 지난 11년간 무수히 많은 사연 속의 주인공을 만났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랑으로 절망을 함께 극복하는 사람들, 병마와의 싸움에서도 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상으로 담겨 안방을 찾았다.
일 년에 딱 한 달이지만, ‘휴먼다큐 사랑’을 위해 제작진은 반 년 이상을 앞서 준비를 시작한다. 해마다 가을이면 프로그램을 연출할 PD를 결정하고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한다.
결정된 두 명의 PD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랑’에 출연할 주인공을 찾는다. 블로그에 올라온 댓글 한 줄, 지역 신문의 토막 뉴스 하나 놓치지 않는 것이 적합한 주인공을 찾는 과정이다.
카메라 앞이 낯선 평범한 사람들에게 평균 6개월, 길게는 3년까지 자신의 삶을 보여달라고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가랑비에 옷 젖듯 출연자들의 삶 속에 어느 순간 훅 들어가요. 그게 가능한 이유도 오랜 시간 출연자와 제작진이 함께 하면서 신뢰가 쌓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이모현 PD) 섭외의 과정은 일반인이든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든 수월하지 않다. “그래도 ‘휴먼다큐 사랑’이니까 믿어주시더라고요. ‘사랑’이니까 하겠다고요.”(이모현 PD) 지난 11년간 ‘사랑’이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해마다 5월 안방에 따뜻한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휴먼다큐 사랑’은 2006년 5월 ‘뻐꾸기 가족’, ‘너는 내 운명’을 시작으로 43팀의 가족을 만났다.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한 담백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나면 시청자들은 매회 치유와 희망을 발견했다. 각박하고 고단한 일상에 찾아든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평범하고 사소한 것의 가치를 환기시키며, 우리들의 삶에 ‘선의’를 확장”했다. 프로그램 이후면 소개된 가족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과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시청자들의 수가 많다.
16%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평균 6%대, 약 3분의 1로 시청률이 줄었다. 그럼에도 11년을 버틴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해마다 제작진이 ‘사랑’의 가치를 되새기는 이유다. 김진만 CP는 “지난해 10주년을 끝내고 ‘휴먼다큐 사랑’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가치가 있는 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며 “어렵게 시작해 ‘무한도전’처럼 11주년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다시 돌아온 2016년의 ‘사랑’엔 “모두가 힘든 세상, 마음껏 울게 해주는, 비극적인 눈물이 아닌 감동과 희망의 눈물“(김진만 CP)이 되기를 바라는 제작진의 마음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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