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년간 필자는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학생 지도와 외부 활동도 해야 하지만, 교수로서의 의무는,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지식재생산이다. 새 지식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내 학계와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항상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매우 즐겁다. 즐거운 일을 업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겐 배움이 전혀 즐겁지 않은 것 같다. 학생들에게 물어볼때 배운다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는 이를찾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 중ㆍ고등학교 학생에게 배움은 억지로 떠밀려 해야 하는, 매우 괴로운 일이다. 사실 나 역시 그랬다. 중고등학교 시절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공부를 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대학에 와서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절박하게 하루하루 버텨냈었다.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 경우는 많지 많았다.
대학에서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에 더 깊게 공부를 하면서부터, 뒤늦게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어제보다 오늘 하나 더 배웠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다. 우리는 쉽게 망각하며 살고 있지만, 살아 있으면서 새로운 것 하나를 더 배웠다는 자체가 감사하고 기쁜 일인 것이다. 배움으로써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게 되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고, 나아가 배움을 잘 활용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기대. 이 모든 것에서 오는 본능적인 즐거움과 기쁨이 바로 배움의 보람이 될 수 있다. 다른 동물들은 느낄 수 없는, 고등 사고를 하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정이다. 공자가 논어를 통해 역설하고자 했던 내용도 바로 배움의 즐거움이었다.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학생들이 교육 과정을 겪으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야 할 것이다. 비단 학계로 진로를 정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오기 위해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파악하고 대안을 내놓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교육시스템은 유치원에서부터 아이들이 공부라면 진절머리 나게 하는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다.
입시제도를 바꾼다고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내용을 쉽게 해서 변별력을 낮추는 방안은 학생들이 더 공부를 괴롭게 해야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공부를 할수록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무한 반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을 쉽게 한다고 학생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배움에서 오는 즐거움은 역설적으로 쉽지않은 내용을 공부할 때 더 느낄 수 있다. 막혀있던 어려운 문제의 풀이를 생각해 낼 때 그 찰나에 느끼는 희열을 느껴본 사람은 계속 공부를 하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입시나 취직, 승진과 같이 즉각적인 이익이 보이는 공부 외에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매우 적다는 점이다. 그냥 재미있어서 아니면 궁금해서 공부를 깊게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스마트폰으로 SNS을 통해 전달되는 인스턴트 정보가 대부분이다. 사회에 지식그룹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전문가 집단이 매우 제한적이다.
공부를 통해 더 좋은 대학이나 직장을 가고자 하는 경쟁,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욕심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부가 평생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남는다면, 개인이나 사회 모두 큰 손실이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아마추어 화가 이야기가 아니다.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여겨지는 반 고흐가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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