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김대우 헤럴드경제 기자]지난 20일 오후 4시 여수신항 관공선 계류장. 라이프 자켓(구명조끼)를 입고 세관 감시정에 올랐다. 국립여수검역소 검역관들과 함께 였다. 감시정의 관세청 마크가 뚜렷했다. 여수검역소도 감시정이 있었지만 5공화국때 세관에 모두 넘겨줘 지금은 감시정이 없다고 한다. 매번 해상검역을 나갈때마다 관세청의 협조를 얻어 세관 감시정을 이용하고 있다.
감시정은 오른쪽으로 오동도를 부지런히 뒤로 밀어내면서 미끄러지듯 달렸나갔다. 금새 탁 트인 바다가 펼쳐졌다. “GPS 항법장치 등 최첨단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2011년 30억원을 들여 건조됐습니다. 빨아들인 물을 뒤로 뿜어내면서 추진력을 얻는 롤스로이스의 ‘워터젯트’ 방식으로 최대 35노트(시속 65km)의 속력을 낼 수 있지요.” 자부심 담긴 나이지긋한 정장의 설명이다.
15분 정도 먼바다로 달려 도착한 곳은 여수 앞바다 제1검역장소인 W구역. 검역을 받기 위해 선박들이 대기하는 묘박지(錨泊地)다. 정박해 있는 붉은 빛깔의 육중한 부피를 자랑하는 대형 화물선 한 척이 점점 가까와진다. 바로 오늘 해상검역 대상 선박이다.
바람이 잦아들고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여수검역소 손우석 팀장은 “검역선박에 오르려면 감시정을 배 옆에 바짝 붙이고 위에서 내려주는 줄사다리나 철제계단을 밟고 곡예하듯 올라가야 한다”며 “날씨가 거칠어 파도가 치고 풍랑이 거세지면 감시정에서 검역선박에 승선하기가 위험해져 철수해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원유운반선은 보통 7만t을 훌쩍 뛰어넘고 10만t이나 16만t 규모도 입항한다고 한다. 이럴 경우 검역하러 줄사다리나 철제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높이가 5층 건물 정도 된다.
다행히 검역대상인 ‘알젠트 선라이즈’(ARGENT SUNRISE)호는 2만2000t규모여서 감시정에서 갑판까지 높이가 10m정도 밖에 안되는데다 바다마저 잔잔하고보니 이날은 비교적 손쉽게 승선했다. 파나마 선적의 화학원료운반선인 이 배의 갑판은 크고 작은 긴 배관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선내로 들어가니 비좁은 통로가 미로 같아 길을 잃게 만든다. 지난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출항해 이곳으로 왔으며 경력 15차인 오용택 선장을 포함해 한국인 선원 12명, 미얀마 선원 13명 등 총 25명이 타고 있었다.
2인 1조인 여수검역소 검역관들은 선장의 안내를 받아 선내 식당으로 들어갔다. 검역이 시작된 것이다. 먼저 선장은 ‘선박 보건상태 신고서’를 작성하고 선원명부와 항해일지 등 각종 서류를 제출했다. 이어 선원들에게 배포한 노란종이의 ‘건강상태 질문서’로 검역조사를 하고, 이어 선원들 한 명씩 일일이 체온을 측정하는 발열검사를 하는 것으로 선원검사를 마무리했다.
이어 선내 위생검사가 시작됐다. 주방에 들어가 도마와 싱크대, 선원실, 식품창고, 화장실의 위생점검을 하고 긴 면봉 형태로 된 조그만 스틱을 쓰레기통이나 오수 화장실 변기 등에 문지르거나 묻혀서 검체를 확보하는 가검물 채취가 진행됐다. 가검물은 검역소에서 배양과정을 통해 정밀검사를 한다. 가검물은 통상 1만t이하 선박이면 2건 이상, 1만t이상 선박이면 4개 이상을 체취한다.
모든 입항 선박이 검역대상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지정 감염지역인 중국과 동남아 등을 방문한 선박이 주된 검역대상이 다. 요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지카 바이러스 등으로 감역 위험지역이 늘어나 감염지역 국가가 총 80개국에 달한다.
계속되던 검역은 오후 5시께 오용택 선장에게 검역증을 발급해주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어 오 선장의 지시로 알젠트 선라이즈호의 마스터 상단에 ‘검역대기 중’을 알리는 노란 깃발이 내려졌다. 그 위쪽에는 빨간 깃발이 여전히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오 선장은 “위험물질을 싣고있는 화학물 운반선이라는 깃발 표식”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갑판에서 아래에 배를 갖다 붙인 세관 감시정으로 옮겨타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안도감에 피곤이 몰려온다.
항구로 돌아가는 길에 7만t규모의 원유운반선 근처를 지나갔다. 파나마 선적의 샤함(SAHAM)호였다. 해수면에서 갑판까지 족히 15m가 넘어 보였다. ‘저게 바로 5층 건물 높이다. 갑판까지 오르려면 까마득할 텐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여수검역소가 담당하는 여수항과 광양항에는 연간 9300여척이 넘는 배들이 오가고 이 가운데 3500여척이 승선검역 대상이라고 한다. 직원 23명(광양지소 7명 포함)이 하루에 10건 꼴로 검역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검역은 낮시간 뿐만 아니라 야간에도 24시간 실시되고 주말, 휴일도 없이 연중 365일 계속된다. 박기준 여수검역소장은 “선주들은 배가 들어오면 빨리 검역을 마치고 일을 마무리하려고 하기 때문에 검역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행된다”며 “검역이 지체되면 당장 민원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여수검역소 관계자는 “검역 선박은 계속 늘어나는데 인력은 그대로여서 인력부족이 심각하다”며 “청년실업에 이런 얘기 하기는 뭣하지만 늦게 야근한 다음날에도 정시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고, 3교대제 근무는 언감생심 딴 세상 얘기일 뿐”이라고 푸념했다.
여수에는 세관과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있는데 현재 세관은 92명, 출입국관리사무소는 43명이 근무하고 있어 검역소보다 2~4배 가량 인원이 많다. 검역소의 인력부족 문제는 비단 여수만의 얘기는 아니다. 전국 13개 검역소가 공통적으로 부닥치고 있는 애로다. 글로벌화로 선박이나 비행기 등 검역대상이 크게 늘고 있지만 검역인원은 오히려 줄었다. 2010년 19만4000건이던 검역대상 선박과 비행기는 지난해 41만3000건으로 2배 이상 불어났지만 검역인력은 같은 기간 335명에서 325명으로 오히려 10명 줄었다. 검역소와 유사한 업무를 하는 세관(2948명), 출입국관리사무소(1201명), 농림축산검역본부(452)에 비해 근무 인원이 현저히 적다. 이래서 “사람이 동물이나 식물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뼈있는 농담도 나온다.
한편 여수검역소는 전국의 13개 검역소 가운데 유일하게 생물안전3등급시설(BL3)을 보유, 탄저 등 고위험병원체 대응능력을 확보하고 있는 곳이다. 또 지난해 박기준 소장 부임이후 예방접종후 출국자에 대해 방문국의 해외감염병 안내 및 입국전 간편건강상태 체크리스트를 문자로 제공하는 ‘SMS통한 해외감염병 정보제공 서비스’를 도입해 저비용으로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 또 감염병 매개체 감시 및 플라비바이러스 검사 일원화를 제안, 업무효율성을 높인 공로로 우수제안상을 받기도했다.
박 소장은 “국가안보는 60만 군대가 지키는데,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등 해외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일은 325명의 검역소가 책임지는 상황인 만큼 검역소의 일원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뭐니뭐니해도 감염병은 유입된후 대처하기 보다는 검역으로 미리 차단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돼야한다”고 강조했다.
dewkim@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