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아침 6825t급 세월호가 갑자기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선체가 힘없이 기울면서 객실은 일순간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배 안으로 갑자기 물이 들이차더니 옷장과 집기들이 한쪽으로 쓰러졌다. 이런 아비규환의 위급 상황에서도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숨은 영웅’들이 있었기에 사상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다.
단원고 2학년 6반 담임교사였던 고(故) 남윤철(35)씨는 침몰 직전의 세월호에서 끝까지 남아 학생들을 구하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숨을 거뒀다. 남씨는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진 이날 오전 10시쯤 선실 비상구 근처에 있었다. 그는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빨리 빠져나가라”며 신속히 대피시켰다. 교편을 잡은 지 올해로 7년째인 남씨는 배에 물이 차오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등을 떠밀어 학생들의 탈출을 먼저 도왔다.
남씨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제자 박호진(17)군은 부모가 모두 실종되고 홀로 생존한 권지연(5)양을 품에 안고 탈출했다. 박군은 갑판으로 뛰어나가 구명보트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함께 수학여행 온 같은 학교 여학생 친구들이 일렁이는 파도 앞에서 보트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순서를 양보한 박군은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돼 보트에 오르려는 순간 물에 흠뻑 젖은 채 갑판 위에서 울부짖는 꼬마 한 명이 눈에 띄었다.
결국 반사적으로 뒤로 돌아가 아기를 들쳐 안고 구명보트에 뛰어올랐다. 무조건 애를 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박군은 탈출 후 “아기가 물에 흠뻑 젓은 채 울고 있기에 어떤 생각도 없이 안고 구명보트로 뛰어내렸다”고 전했다.
권양은 부모, 오빠와 함께 화물트럭에 이삿짐을 한가득 싣고 제주도 새집으로 이사 가던 길이었다. 사고 당시 권양 어머니와 오빠는 마지막까지도 권양을 구하기 위해 구명조끼를 입히고 등을 떠밀어 탈출을 도왔던 것을 알려졌다. 권양의 아버지는 서울 생활을 끝내고 감귤 농사를 지으려 제주도 귀농을 결정했던 터라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바쁜 생업에도 단숨에 달려가 27명의 귀한 생명을 구한 낚싯배 명인스타호 선장 박영섭(56)씨도 또 한명의 영웅이다. 박씨는 이날 새벽 조업을 마치고 귀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따뜻한 아침밥 생각이 간절하던 때 날카로운 무전 신호가 박 선장의 귀에 날아들었다. 수협 목포어업통신국이 오전 9시3분 송신한 긴급 구조 요청 신호였다.
병풍도 북쪽 1.5마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박씨는 바로 뱃머리를 병풍도 쪽으로 돌렸다. 오전 10시30분께 사고 현장에 도착한 박씨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국내 최대 여객선 세월호는 이미 심하게 기울어 침몰하기 직전이었다.
박씨는 명인스타호를 세월호 바로 옆으로 몰아 바다로 뛰어내린 승객 27명을 배에 태웠다. 구조된 승객들은 바닷물에 흠뻑 젖은 채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었다. 박씨는 27명의 조난객을 태운 채 전속력으로 내달려 1시간여 만에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뭍에 발을 디디고서야 세월호 승객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박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명인스타호 외에도 사고 당일 구조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달려온 어선은 20여척에 이른다. 이들은 해경과 함께 바다로 뛰어든 승객 50여명을 구조했다. 생계를 중단하고 달려온 어선들 덕에 그나마 인명피해가 줄어든 것이다. 세월호 승무원 중 유일한 사망자인 고 박지영씨는 선내로 물이 들어오자 4층에서 구명조끼를 3층 학생들에게 양보하며 승객 구조에 힘쓰다 결국 사망했다.
단원고 2학년 정차웅(18) 군도 물이 차오르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들에게 벗어줬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평소 남을 잘 배려하고 쾌활한 성격이던 정군은 검도 사범의 꿈을 키워왔지만 끝내 그 꿈이 무산됐다.
서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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