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야당 후보는 이름조차 생소한데 어떡합니까?”, “새누리당 후보는 얼굴도 보지 못했어요.”
지난 9일 사전투표 날. 곳곳에서 들린 토로다. 진원지는 소위 여권ㆍ야권의 심장부 대구와 광주다.
‘김부겸ㆍ이정현’ 열풍은 민심이 변하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이들이 있었기에 변화가 시작된 측면도 강하다. 지역주의 타파를 목표로 도전하는 정치인이 있었기에 변화하는 민심을 담을 그릇이 생겼고, 그래서 균열은 가시화됐다.
‘제2의 김부겸ㆍ이정현’은 여전히 요원하다. 지역주의를 깨고 싶어도 찍을 후보가 없다는 호소를 정치권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당선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총선 이후 세 싸움을 걱정하는 정치권의 ‘보신주의’는 말로만 지역주의 타파를 외칠 뿐 정작 지역주의 타파의 열망을 담아낼 ‘그릇’을 자처하지 않았다. 구색 맞추기식 후보만 내놓을 뿐 중량감 있는 정치인의 도전은 여전히 극소수다. 찍을 후보를 내달라는 민심의 토로는 여전히 여의도까진 들리지 않는 듯하다.
사전투표날 곳곳에선 ‘갈등’을 토로하는 목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대구가 고향이라는 한 직장인(26)은 “후보 명부엔 지역에서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새누리당 후보, 그리고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본 적 없는 더민주 후보 뿐”이라며 “새누리당을 뽑기 싫어도 뽑을 후보가 없다”고 했다. 광주도 다르지 않다. 광주에 거주하는 오승영(30ㆍ직장인) 씨는 “새누리당 후보가 있긴 한데 사실상 이름만 올려놓은 듯하다”며 “기계적으로 야당만 찍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한 번쯤 고민해보려 해도 고민하게 할 후보가 없다”고 전했다.
일례로 대구 달서병에 거주하는 시민이라면 조원진 새누리당 후보, 김부기 친반통일당 후보, 조석원 무소속 후보 중에 선택해야 한다. 새누리당 지지자가 아니라면, 무소속을 찍거나 친반통일당 후보를 찍거나 둘 중 하나다. 대구 서구 역시 김상훈 새누리당 후보 외에 서중현ㆍ손창민 무소속 후보 뿐이다.
광주 북구갑 역시 새누리당 후보가 없다. 정준호 더민주 후보ㆍ김경진 국민의당 후보ㆍ장세레나 민중연합당 후보ㆍ박대우 무소속 후보 등이다. 새누리당 후보 지지층은 선택권조차 없는 셈이다.
지역주의를 타파하려는 시도는 이미 기저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이끌어야 할 정치권은 제자리걸음이다. 항상 지역주의 타파를 앞세우지만, 정작 명망 있는 정치인의 도전은 이번 총선에도 손에 꼽을 정도다. 중량감 있는 정치인을 안정 지역에 배치하는 게 정당의 이해관계에 맞다. 소위 ‘텃밭’이 뒤흔들려선 안 된다는 정치권의 암묵적인 공감대가 공천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뽑을 후보가 없으니,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새누리당을, 더민주를, 국민의당을 뽑게 된다. 그리고 결과는 또다시 지역주의다. 정치권의 보신주의가 악순환시키고 있는 ‘강요된 지역주의’다.
대구에서 선전하는 김부겸ㆍ홍의락 전 의원과 순천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이정현 의원은 정치권에 연이여 경종을 울린다. 정치권이 도전한다면 이미 민심은 ‘포스트 지역주의’를 준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 역시 당선권에서 거론되는 정치인은 김부겸ㆍ홍의락ㆍ이정현 후보 정도다. 찍을 후보가 없어, 투표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겠다는 토로는 이번 총선에도 반복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