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울한 누명’ 중국인 1심서 유죄, 가족ㆍ변호사 끈질긴 노력으로 명예회복 - 수사 과정에서 “통역 바꿔달라” 수차례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 통역 말만 믿은 사법당국, 형사보상금 4700만원 ‘국민 혈세’로 지급
[헤럴드경제=양대근ㆍ김현일 기자] “검찰도 통역에 문제가 있는 줄 몰랐죠. 잃어버린 제 명예를 찾고 싶었어요.”
중국인 A(47)씨는 한국에서 일용직 노동을 전전하다 지난 2012년 불법체류자 신분이 됐다. 당국의 눈을 피해다니던 A씨는 같은 중국인이자 평소 친분이 있었던 B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덜미를 잡혔다. 결국 그는 같은 해 10월 중국으로 강제출국됐다.
문제의 사건은 이듬해 일어났다. A씨가 한국인으로 귀화한 조선족 아내와 결혼하면서 1년만에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이 소식에 전해지자 B씨는 덜컥 걱정이 앞섰다. “보복하면 어쩌지” 생각이 들어 잘 알고 지냈던 한국인 통역사 C씨에게 연락했다.
C씨는 경찰의 외국인수사대 소속으로 일이 있을 때마다 통역하는 인물이다. 불법체류자 신분이던 A씨를 검거하는 현장에 경찰과 함께 출동하기도 했다. 셋 다 서로 얼굴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2013년 7월 사건이 터졌다. 전남 순천시에 있는 한 아파트 공사현장 인부 숙소에서 쉬고 있던 B씨 앞에 A씨가 나타났다. 둘 사이에 실랑이가 있고 나서 얼마 후, B씨는 “머리와 안면부 등을 폭행당했다”며 A씨를 경찰에 고소했고 그 증거로 녹취록과 녹음파일을 제출했다. 녹음파일에는 “말로 하지 왜 그러느냐?”, “네가 신고해서 내가 많은 고생을 했다” 등 폭행을 의심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고소장이 접수된 후 경찰 조사가 시작됐다. A씨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폭행) 혐의로 체포돼 당국에 구속됐다. 한국말을 못하는 A씨는 검ㆍ경 수사과정에서 “B씨를 툭툭 치긴 했지만 폭행을 가한 사실은 결코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통역에 관여하고 있던 C씨를 알아보고 “통역을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수사당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결국 A씨를 기소했다.
2014년부터 재판이 시작됐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제출한 증거와 피의자신문조서, 정황, 법정진술 등을 감안해 A씨에게 징역 8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끝난 줄 알았던 재판의 양상은 2심부터 180도 달라졌다. B씨가 제출한 녹음 파일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A씨와 그의 가족은 “녹취록이 이상하다”, “중간에 조작된 흔적이 있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금전적인 이유로 인해 감정을 의뢰하진 못했다.
민간업체에 맡길 경우 400만원 가까이 들어 직업이 없던 A씨가 부담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A씨의 변호인이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에 증거 감정을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져 금전적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검찰의 감정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B씨는 “갤럭시 노트2로 당시 상황을 녹음했다”고 주장했는데 정작 당국에 제출한 파일은 아이폰의 녹음파일로 밝혀졌다. 여기에 일부 배경음에서 급격한 변화가 발견되는 등 편집의 흔적이 다수 드러났고, 중간에 과일을 먹는 소리가 들리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2심 재판부는 녹취록이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통역인 C씨의 진술에 대해서도 “B씨로부터 들은 내용만 증언하고 있을 뿐”이라고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B씨가 ‘얻어맞은 부위가 벌겋게 부어오를 정도였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점에 대해서도 피해 부위를 목격한 사람과 약국에서 약을 샀다는 증거 등 이를 뒷받침할만한 아무런 자료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유죄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거여야 하며, 의심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2심 판결을 받아들였다.
무죄 선고 이후 A씨는 자신이 구금돼 있었던 225일에 대해 법원에 형사보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형사보상청구권은 형사피의자로 사법당국에 구금됐던 자가 불기소처분이나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 그가 입은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손실을 보상해 줄 것을 국가에 대해 청구하는 권리를 말한다.
서울고법 제9형사부는 지난해 말 “국가는 보상금 상한(1일 22만3200원)액수를 적용해 A에게 4689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A씨의 변호인이었던 윤석준 변호사(사법연수원 40기)는 “수사당국이 통역인 참여 과정에서 이 사건과 관련 있었던 사람인지 미리 확인했는지 의심스럽다”며 “녹음 파일에 대해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유죄의 증거로 삼은 것은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A씨는 현재 B씨를 무고죄로 고소한 상황이다. C씨는 여전히 경찰 소속으로 통역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 법원 통역들 간에는 서로 파벌 관계가 형성돼 있다”며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다른 대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수사기관으로서도 통역을 믿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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