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정치’ 기반 샌더스 파죽지세 큰손지원 젭 부시는 지지율 바닥
올해 미국 대선은 과거 어느 때보다 금권 선거의 성격을 띌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미국 대법원이 2014년 슈퍼팩(Super PAC)에 대한 선거자금 기부 제한을 폐지하면서, 부자와 대기업들이 입맛에 맞는 후보에 거액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상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슈퍼팩은 공식 선거운동 조직이 아닌, 후보의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외곽 지원 조직이다. 지지 후보에게 직접적으로 협조할 수는 없지만, 텔레비전 광고 등으로 측면 지원할 수 있다. 기부 주체와 자금에 제한이 없어서 정치판을 무제한적인 ‘쩐(錢)의 전쟁’으로 변질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월가의 초대형 은행이나 대형 석유회사, 미국총기협회처럼 돈을 갖고 있는 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정치를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슈퍼팩에 역대 최대 금액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려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막상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된 아이오와 코커스 이후 분위기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미국 연방선거위원회(Federal Election Commission)가 집계한 지난해까지의 후보당 슈퍼팩 자금을 보면, 슈퍼팩의 지원을 받지 못한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돈의 힘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이오와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접전을 펼친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샌더스는 2015년 한 해 동안 슈퍼팩 후원금이 고작 230만 달러(27억6400만 원) 모였다. 전체 후원금의 3%에 불과하다. ‘풀뿌리 정치’가 기반인 샌더스는 정치후원금을 온라인 소액기부를 통해 확보해왔다.
반면 힐러리는 슈퍼팩을 통해 4340만 달러의 후원금을 모았다. 샌더스의 19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샌더스는 힐러리가 월가로부터 막대한 정치 후원금을 받는다는 점을 꼬집으며, 그가 ‘월가 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공화당은 민주당에 비해 6배나 많은 슈퍼팩의 지원이 집중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돈의 위력을 그다지 느끼기 힘들다.
가장 돈 값을 못하는 후보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다. 그는 슈퍼팩으로부터 1억2370만 달러(1487억1200만원)의 후원금을 모아 모든 후보 중 가장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지만, 아이오와에서 고작 2.8%(6위)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다. ‘세 번째 부시 대통령’이라는 식상한 이미지에다, 경쟁력마저 보여주지 못하면서 초반에 몰렸던 조직과 자금은 속속 이탈하고 있다. 공화당 주류는 이미 그를 제쳐두고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쪽으로 후보를 단일화하려고 가닥을 잡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대로 아이오와에서 2위를 차지하고, 오는 9일 프라이머리가 열리는 뉴햄프셔에서도 압도적 지지를 자랑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는 슈퍼팩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있다. 억만장자인 트럼프는 “나는 선거운동 자금을 자체로 조달하고 있고, 정치를 오랫동안 부패하게 했던 기부자나 이익단체, 로비스트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는다”며 “다른 출마자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최근에는 자신이 슈퍼팩의 후원 없이 독립적으로 선거운동을 치르는 것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투정에 가까운 불만을 토하기도 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슈퍼팩으로부터 각각 4190만 달러와 4750만 달러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선거가 진행될수록 슈퍼팩이 더욱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웰즐리언미디어프로젝트는 “선거 초반이라 전국적인 이슈가 없어 전통매체의 광고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선거 후반에 접어들면 전통매체의 광고 효과가 높아지면서 자금력을 갖춘 슈퍼팩의 위력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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