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옛날 중동의 어느 마을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재앙의 원인으로 기르던 양 한마리를 지목했다. ‘신이 노여움을 거두시길…’이라며 사람들은 양을 화형시키고 문제가 해결됐다며 안심했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속죄양’이다.
속죄양은 문제가 너무 복잡하고 원인이 복합적이어서 해결이 난망할 때 사람들이 흔히 찾는 해결 방식이다. 비논리적이고 구시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애용된다.
최근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불러 일으킨 ‘황제 노역’ 사건으로 사법부는 지역법관제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황제 노역 판결’이 향판-향검-향변의 유착 때문이라는 여론의 십자포화에 10년간 정착시키려 노력해온 정책을 한순간에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황제 노역 판결’이 정말 지역법관제 때문이었을까. 허 전 회장 사건에서 극단적으로 현실화되기는 했지만, 일당 수억원짜리 판결은 종종 있어왔다. 벌금 2340억원을 선고받은 권혁 시도상선 회장의 일당은 3억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일당은 1억1000만원, 손길승 SK 명예회장의 일당은 1억원이었다.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은 지역법관이 아니다.
오히려 한 지역에서 오래 근무해 왔음에도 누구보다 윤리적인 처신으로 존경받는 판사들도 있다. 28년간 영남 지역에서 법관 생활을 하며 ‘청빈 대법관’으로 불렸던 조무제 전 대법관, 18년간 지역에서 근무하다 현재는 구청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있는 배기원 전 대법관, 29년간 지역에서 판사생활을 하며 소수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던 김신 대법관은 그 좋은 본보기다.
지역법관제는 순기능이 많은 제도다. 부당한 인사로부터 재판부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재판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제도다. 지역의 실정을 고려한 합리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 때문에 재판부의 독립성이 극히 낮은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법조 선진국 상당수가 지역법관제를 시행하고 있다.
허 전 회장은 벌금 자진 납부 의사를 밝혔고, 사법부는 성급히 양 한마리의 목을 치며 대리 속죄했다. 계속됐던 성난 여론은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하지만 먼훗날 그 양의 죄가 없었음을 알게 된 순간, 애꿎은 양을 잃은 우리를 자책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