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얼마 전 일본 TV에서 한국 드라마가 사라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는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는데도 일본에서는 조용하다. 중국은 심의와 규제가 점점 거세지고 있고, 유럽 중동 남미는 아직 수익을 올리기보다는 더 개발하고 확장시켜 나가야 하는 단계라는 점에서 일본의 한국 대중문화 시장의 침체는 충격이기는 하다.
일본 한류 침체는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 보수 우익으로 치달으면서 생긴 양국 간 정치관계 악화에 기인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갑자기 나타났다기보다 단계별로 그렇게 됐다. 한국 드라마와 ‘K-팝(Pop)’을 일본에서 홍보하거나 마케팅하는 게 불가능해진 지도 제법 됐다. ‘소녀시대’와 ‘카라’의 일본 매출은 이미 뚝 떨어졌다. 후지TV 등에서 일본 주부들이 시청하기 좋은 오후 4시대에 ‘미남이시네요’ 등을 방송,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문화의 흐름이 정치와 외교에 의해 위축된다는 것은 후진적인 발상이다. 문화는 국경 없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콘텐츠만 좋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 딸 서영이’가 일본에서 KBS재팬을 통해 방송됐는데 반응이 좋아 재방송됐고, 또 다른 위성 채널에서 세 번째 방송을 할 계획이다. 일본인에게 반응이 약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상력과 기획력이 훌륭한 드라마는 아베도 말릴 수가 없다.
하지만 일본의 보수 우경화와 이런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기는 일본 방송국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자세는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3월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의 ‘조슈번의 후예들-왜 안중근을 죽이는가?’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 사형을 판결한 배후 세력이기도 한 일본 보수 우익의 근거지를 추적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
제작진은 이 과정에서 아베의 우익 DNA가 조슈번(야마구치현)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베의 친부인 아베 신타로,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작은외조부 사토 에이사쿠, 고조부 오시마 요시마사까지 모두 조슈번 출신이었다. 이토 히로부미와 그 외 메이지유신의 중심인물이자 조선 병탄의 주역들이 거의 조슈번 출신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배후에는 이들의 스승이자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일본 보수 우익이 태동한 두 근거지는 조슈번과 함께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를 배출한 사쓰마번(가고시마현)이다. 이 둘 사이의 동맹을 이뤄내 메이지유신이 가능하도록 한 이가 일본에서 최고 존경을 받는다는 사카모토 류마다.
조슈번에서 우익 정치가와 지도자를 양성한 사람은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요시다 쇼인이다.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서양 학문까지 배웠던 그는 고향인 야마구치의 하기(萩)시로 돌아와 사설 학교인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열고 하급 무사들을 가르쳤다. 그의 제자들은 메이지유신 3걸 중 한 사람인 기도 다카요시와 일본 초대총리를 포함해 4차례의 총리를 역임한 이토 히로부미, 비스마르크에게 군대제도를 배워 일본의 군제 개혁을 단행하고 조선 침략을 행한 군 최고 실권자 야마가타 아리토모, 명성황후 시해의 배후인 미우라 고로 조선 공사, 가쓰라ㆍ태프트 밀약의 장본인인 가쓰라, 오시마 요시마사(아베의 고조부) 등이다. 모두 우익의 대변자가 돼 메이지유신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조선을 괴롭힌 사람들이다. 하기시에는 지금도 이토 히로부미의 별장이 그대로 있다.
요시다 쇼인은 중국처럼 서구 열강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본이 스스로 단결해 서구에 대처해야 한다고, 그럴듯한 주장을 폈다. 하지만 요시다는 중국이 서구 열강에 당하는 과정을 보면서 일본도 힘에서는 미국과 영국 등에는 안 된다고 보고, 거기서 손해 볼 것을 아시아에서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아시아공영론’ 등으로 포장한 것이지, 실제 내용은 인접국들에서 이익을 취해 보상받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셈이다. 대동아공영의 허구는 거기서 드러난다. 센카쿠열도 분쟁을 일으키고 오키나와를 침공하며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우기는 것에 대한 생각과 논리가 모두 여기서 배태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 보수 우익을 좀 더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서병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