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표를 한번에 다 설명하는 게 무리라는 생각이 들지만,성장 배경은 궁금했다.
노 대표는 서울 명륜동에서 부잣집 딸로 태어나 고2때 미국으로 유학갔다. 엄마는 자신과 2살 아래의 여동생에게 한번도 같은 옷을 입히지 않았다. 언니에게는 고급스럽고 지적인 옷을, 언니보다 훨씬 예쁜 동생에게는 화려하면서 싼 옷을 입혔다. 어머니는 “너는 달라야 한다”는 자신감과 선민사상(?)을 길러주었다. 아버지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꼭 가족에게 먹어보게 했다. 한일관, 파인힐, 남표면옥, 유래옥 등 쉽게 먹지 못하는 음식을 어릴 때 다 맛봤다. 명문사립대 USC 의예과에 진학했지만 의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고 중퇴하고 파슨스디자인스쿨로 전입, 액세서리 프로덕트를 전공했다. “나의 크리에이티브와 솔루선은 파슨스에서 많이 배웠다. 뉴욕을 찍어라는 숙제때문에 추위에 벌벌 떨며 뉴욕에 가 사진을 찍고왔더니 다른 애들은 앉아서 뉴욕을 상징하는 사과나 뉴욕을 걸었던 신발을 찍어왔더라. 여기서 상상하는 법을 익힌 거다.”
노 대표는 1997년 청담동에 고급퓨전식당 ‘궁’을 차렸다. 오픈 하자마자 IMF 체제로 돌입했지만, 새 것과 고급을 내세워 성공시켰다. 그때 컨설팅은 자신의 돈으로 실패와 성공을 맛본 사람이 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노 대표는 요즘 ‘덕후’니 ‘마니아’니 하는 친구들에 대한 관심도 많다. 이들은 인내력이 부족한 흠이 있지만 ‘건전한 또라이’로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요즘 주부라는 단어는 없다고 봐야한다. 50대 여자도 빅뱅콘서트를 보고, 20대 여성도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면서 전통적인 타깃마케팅은 안통한다고 했다.
노대표는 “성질도 더럽고, 집착증, 편집증도 있다”고 인정했다. 승부사 기질이 강하며 개발중독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는 “사랑받는 리더, 존경받는 리더는 아니다. 젊은이들이 나를 통해 크면 된다. 내가 위악을 떨어서라고 아이들이 성장했다면 나는 족하다”고 했다.
이렇게 방대한 사고체제를 가진 노희영이라는 인간을 정리하는 게 쉽지 않다. 그는 적어도 4차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인간은 아니다. 생각이 날아다니기도 한다. 그렇다고 천재 혹은 ‘또라이’로 나눌 수 있는 인간은 아니다. 가끔 ‘엉뚱’과 비약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간극에는 치밀한 연구와 조사가 있다. 그리고 그 데이트를 읽어내는 감성과 상상력을 갖춘 치밀한 ‘감성문화마케터’임에는 틀림없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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