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경기부진 ‘우울증 사회’ 한국야구 9회 대역전 묵직한 울림 주력 대거 불참·은퇴 감독 지휘봉 新舊조화 팀워크로 최고의 팀 변신 앓는 한국경제에 죽비같은 깨우침 포기 안할때 기회 온다는 진리 각인
#1. 지인인 중견기업 간부 김홍진(55) 씨. 그가 가끔씩 술자리에서 던지는 말이 있다. 자식 얘기다. “우리 아이가 가끔 말해.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아빠 세대보다 잘 살 수 없을 것 같아요’라고. 그러면 나는 대꾸하지. ‘그렇지 않아. 아빠 세대도 고통스러웠고, 고민의 삶이었지만 죽어라고 열심히 살았기에 그런 것이고, 너희 세대도 열심히 하면 충분히 잘 살 수 있어’라고. 하지만 잘 못알아듣는 눈치야.”
#2. 재계단체에 있는 한 임원도 술자리에서 토로한다. “요즘엔 기업가정신이 사라졌어요. 젊은이들은 안정적인 공무원만 바라고, 도전의식은 없어 보이고…. 기업에 들어온다고 해도 악착같이 덤비지 않아요. 젊은이만 나무랄 수 없어요. 나이 먹은 임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나가라고 할지 좌불안석이라, 그냥 낮은 포복만 하고 있고….”
#3. 친구와의 만남에서도 푸념은 빠지지 않는다. 고교동창인 A는 “이거 나이는 먹고, 고령화 고령화 얘기를 하는데 벌어놓은 것은 없고 국민연금도 못믿겠는 판에 개인연금은 없고, 죽을 맛이야. 회사 잘리면 방법이 없어.”
어느날 갑자기 대한민국에 팽배해진 이같은 ‘패배주의’. 아니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겠지만, 최근들어 부쩍 심해진 주변의 절망과 하소연. 경기는 불황이고, 지갑은 얇아지고, 노후는 걱정되고, 일자리는 점점 없어지다보니 도대체 희망이 없다는 얘기들에 어느해보다 우울한 한해다. 주니어나 시니어나 이같은 무력감에 빠지다보니 제대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한국경제, 오히려 더 코너에 몰리는 듯한 한국경제는 정말 심각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패배주의 한국경제’에 희망을 던진 대사건(?)이 발생했다. 전혀 예상 못했다. 8회까지 ‘괴물 투수’에 끌려다녔고 패색은 짙었다. 포기만 남은 듯 했다. 기적은 9회초에 일어났다. 0-3에서 4점을 따내 4-3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19일 오후 일본 도쿄돔을 싸늘한 침묵 속으로 몰아넣은 대한민국 야구팀 얘기다.
사실 스포츠는 어디까지나 스포츠일 뿐이다. 이길 수도 있고, 질수도 있는 게 스포츠다. 일본과의 미묘한 감정을 제외한다면, 야구 경기 하나 이겼다고 그렇게까지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상징성은 커 보인다. 야구 경기 하나가 대한민국 경제에 주는 교훈은 빼곡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 야구팀은 출발부터가 불안했다. 주력 선수들은 대거 불참했고,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는 감독(김인식)과 쉬고 있는 코치(선동열)를 사령탑으로 구성한 것부터 조롱 대상이었다. 충분치 못한 전력, 세상에 내로라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공백기가 있던 리더층에서 최상의 팀플레이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반문도 뒤따랐다. 그러나 대표팀은 이와 같은 불신을 단박에 걷어찼다.
승리의 요인은 복합적이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한번 해보자’는 악착같은 근성은 게임을 더할수록 덕지덕지 붙었고,‘이번엔 절대 안된다’고 비웃을때도 최선의 조합을 창출했다. 무엇보다도 신구(新舊) 조화가 잘 이뤄져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평가다. 감독은 적절한 타이밍의 대타작전으로, 코치는 위기때 흐름을 끊는 투수교체로 선수들에게 믿음을 줬다. 시니어의 경험과 주니어의 끈기, 게임이 쌓이면서 커진 무한 신뢰 속에 가동된 신구조합은 바로 불리함을 딛고 일어선 도쿄대첩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실제 승장 인터뷰에 나선 김인식 감독은 “정말 기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역시 경기 결과는 끝나봐야 아는 것이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야구팀 선전은 불황의 늪에 허덕이는 한국경제에 ‘다시 불굴의 의지로 일어나라’는 메시지로 다가오는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한국경제는 시름시름 앓고 있다.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어렵다는 얘기도 들린다. 주요 경제전망 기관들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2.2∼3.3%대로 보고 있다. 취업시장은 더 어둡다. 기재부 등은 내년 실업률을 당초의 3.4%에서 3.8%로 상향 조정했다. 한경연은 취업자 수가 올해 30만1000명에서 내년에 24만7000명으로 낮아지고 실업률은 올해 3.7%에서 내년 3.8%로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저성장 속에서 일자리 창출 난관은 여전히 암초라는 의미다. 젊은이들은 더 절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386세대, 그 이전세대의 노련한 경험과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이 어우러지면 경제 난관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국 야구 대표팀이 준 교훈을 우리 사회나 경제계가 잘 음미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민 반응도 재미있다. 야구 마니아인 직장인 이정훈(41) 씨는 “8회까지 0-3으로 지고 있어 성질이 나 텔레비전을 껐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겼다고 하더라”며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어려운 한국경제 역시 끈기를 갖고 (함께)극복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특히 재계가 기업가정신 주간 행사를 펼치면서 ‘도전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한국 야구의 쾌거는 더욱의미있다는 분석이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 한국 야구팀이 일본 야구팀에 맞서 멋진 승리를 했다”며 “이번 승리는 야구팀만의 승리가 아니고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나아가 현재의 어려운 경제위기 극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김영상ㆍ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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