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청소년드라마에서 학교는 병든 공간이었다. 왕따, 폭력, 입시지옥을 사는 아이들을 통해 잔혹하고 살벌한 현실을 그렸다. 보다 극적일 뿐이지, 드라마 속 학교가 현실의 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다큐멘터리는 병든 학교를 바꿀 대안을 찾았다. 2013년 ‘학교의 눈물’은 당시 사회문제로 떠오른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며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한데 모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게 했다. 2014년 ‘부모 대 학부모’는 사교육을 주제로 했다. ‘사교육 일번지’로 불리는 대치동 엄마와 자녀들을 대상으로 ‘기적의 카페’라는 공간을 만들고, ‘학습 감시자’로 전락한 부모들의 변화를 꾀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바람의 학교’는 그간 SBS가 다뤄온 교육 다큐멘터리의 “완결편이자 종합편”(이광훈 CP)이다. 이번엔 29박 30일간 제주도에 학교를 세우고, 새로운 교육실험을 진행했다.
프로그램의 이광훈 CP는 “공교육의 많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프로그램을 출발, “학교가 변화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SBS 창사특집 25주년 특별기획 ‘바람의 학교’가 거창한 바람을 품고 태어난 배경이다.
전국 고등학생의 48%는 학교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학교를 그만 두고 싶다’(2012 인성교육실태조사)고 말한다. 2014년 교육부의 학업중단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한 해동안 2만5000여명의 고등학생들이 학교를 떠났다. 하루 평균 70여명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왜 떠나고 싶은 공간이 됐을까. “학교를 어떻게 변화시키면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신진주 작가)라는 질문이 다큐멘터리 ‘바람의 학교’의 시작이었다.
대안을 찾기 위해 프로그램은 29박30일간 교육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국 고등학교에서 신청을 받아 16명의 아이들과 10명의 교사, 5명의 멘토(예비 교사)가 제주도에 자리를 잡았다.
다양한 학생들이 ‘바람의 학교’에 모였다.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눈과 비가 많이 와서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이들이다. 그러면서도 ‘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 한 켠에 꿈틀대고, 그러다가도 다 집어치우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종잡을 수 없는 10대들이 모였다.
‘바람의 학교’가 굳이 제주도에 세워진 이유가 있다. 한재신 PD는 “읍내까지는 한 시간을 걸어야 하기에 유해시설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통제가 가능한”, “오롯이 교육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적합한 지역이 제주도였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공간에서 아이들이 색다른 기분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바람의 학교’엔 유달리 돌출돼 보이는 아이들이 많다. 소년교도소에서 3년을 보내다 갓 출소한 19세 소년, 술과 담배, 폭력, 욕설을 할 수 없다는 규칙에 발끈하는 문제적 여학생, 탈북 청소년,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아이 등이다. 하지만 자발적인 참여로 모인 아이들은 ‘대표성’을 고려해 선발됐다. 한재신 PD는 “한 학급을 구성하는 학생들의 정규분포에 따라 16명의 아이들을 뽑았다. 아무 문제 없이 조용히 학교를 다니는 아이도 있고, 문제가 있는 아이도 있다. 그 중 평범한 학생들이 절반 가량 된다”며 “학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다양한 아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 16명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교육부의 도움을 받아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최소 7년에서 24년 경력을 가진 교사들 중엔 ”대안학교에서 문제학생들을 가르쳐본 경험“(한재신 PD)도 있다.
이 곳에서의 수업은 실험정신으로 꽉 차있다. 한재신 PD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미래의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수업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현실 속의 학교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입시지옥에 내몰려 학교, 학원, 독서실을 왕복하는 아이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 등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대비하는 과목은 없다. 학생들은 인성을 기르고, 사고할 수 있는 책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나눈다. 정답을 따라가야 하는 공교육 시스템 안에선 결코 불가능해보이는, 성적과는 무관한 수업이 이 학교에서 진행된다.
다큐멘터리가 ‘스쿨픽션’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유다. “상상한 학교가 현실에서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해 ”언젠가는 이뤄질 수 있지 않겠냐”는 취지다.
신진주 작가는 “이런 대안교육은 외국에선 애프터스쿨의 형태로 나타난다. 바람의 학교의 핵심은 국영수가 없다는 점이다. 대입학시에서 벗어난 학교“라며 ”이것이야말로 현실 불가능한 픽션”이라고 말했다.
신 작가는 그러면서 “어떻게 학교가 대학을 빼고 존재할 수 있겠나. 그러나 이 픽션이 가능하다면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며 “외국의 경우 고등학교 진학 이전 1년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많이 준다. 그 부분을 고려했다. 대안교육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에 공교육의 틀 안에 있다면 경제력이나 부모의 능력과 상관없이 이뤄질 수 있지 않겠냐는 현실가능성을 가장 많이 염두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현실적인 벽에도 부딪혔다. 학생들은 통제불능의 상태를 넘나들고,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교사들에게선 대단히 기발한 교육방법이 나오진 않았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30일간의 기숙학교 생활을 통해 소기의 목적에 다가섰다.
한재신 PD는 ”학교에서 하는 수업으로 무기력한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나에 대한 실험이었다“며 ”100%였던 것은 아니지만, 목적했던 것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 학교를 통해 일부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특히 “교육이 잘 구현되고 작동되기 위해선 교사와 아이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교육 현장에선 그 관계가 막혀있다.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며 “바람의 학교에선 24시간 함께 생활하니 관계를 기반으로 마음의 문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이광훈 CP는 “공교육의 문제점을 지적만 하기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다”며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한 달짜리 커리큘럼이 학기가 시작되거나 학년이 올라갈 때 학교에서 실행해보면 효과가 있는 실질적인 대안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바람이 부는 곳은 어디든 학교’라는 의미에, ‘모두의 바람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의미를 더해 세워진‘바람의 학교’는 오는 22일 밤 1부 ‘꼴통’을 시작으로 총 4부에 걸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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