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일이다. 10여군데 언론사 입사 시험에서 죄다 떨어지고 절망하고 있을 때다. 도피가 필요했다. 옥천에 있는 친구 집으로 도망치듯 내려갔다. 친구 집은 느타리버섯을 키우고 있었다. 밥값도 할 겸 버섯 재배를 도왔다. 느타리버섯은 오묘했다. 톱밥에 (버섯)균을 심어 적당할 때 물을 주면 자라지만, 사람의 손길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 세 차례씩 (버섯)하우스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줘야 할 만큼 정성이 필요했다. 느타리버섯에 호스로 물을 뿌려주는데, 다만 선반 구조가 문제였다. 앞쪽에 위치한 버섯엔 물을 충분히 줄 수 있었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버섯에는 아무래도 물이 잘 가지 않아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어느 날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과하다할 정도로 물을 먹은 선반 앞쪽 버섯은 하루 이틀이면 크자마자 무섭게 뽑히는 반면, 사각지대에 있던 버섯은 1주일 뒤에 뽑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영양분을 많이 얻는 버섯은 빨리 자라는 대신 생명력이 짧지만, 반대의 버섯은 긴 생명력을 얻는구나’라는.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한 순간이었다.

가까스로 언론사에 입사했을 때, 그것은 나의 철학이 돼 있었다. 왜 이 같은 ‘개똥철학’을 꺼내는 것일까.

소치올림픽에서 텃세에 밀려 은메달에 그친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 온 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억울해했을 때, 오히려 김연아는 대범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한다”며 메달 색깔에 연연하지 않았다. 예술성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금메달 주인공이 소트니코바로 발표된 순간, 기자는 아쉬움보다는 ‘아, 김연아의 미래가 밝아보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억울한 상황에 대해 ‘큰 그릇의 대응’을 한다면 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도 들었다. 과연 김연아는 나이답지 않은 대인(大人)의 포용력을 보였고, 오히려 편파 판정의 당사자들 스스로 부끄럽게 만들 대범함을 과시했다. 기자는 김연아가 2연속 금메달의 금자탑은 잃었지만, 올림픽 감동의 주인공으로 보다 많은 것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멋진 수용은 IOC 위원이든, 국제스포츠계 거물이든, 보다 밝은 미래라는 반대급부로 이어질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과의 통합신당 창당을 선택했다. 한국 정치사에 혜성같이 등장하면서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결국은 ‘세력’과 손을 잡는 길을 택한 것이다. 기존 정치와는 다른 색(色)을 꿈꿨던 ‘나홀로 정치’에 대한 한계를 딛고자 이 같은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그의 길은 안개 속이다. 신드롬 주인공 위상을 계속 차지할지, 예전의 정치 대선배들이 겪었듯이 기존정치 세력과의 융합에 어려움을 겪고 어느 순간 스러질지, 현재로선 판단 유보다.

확실한 것은 안철수는 현실정치와 타협하면서 세력을 등에 업었지만, 최대 장점이었던 ‘순결성’은 스스로 훼손했다는 점이다. 그가 부르짖던 ‘새 정치’ 명분도 희석됐다. 안철수가 잃은 것, 얻은 것 중 과연 어느 것의 부피가 더 클까.

김영상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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