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서 “직을 걸겠다”고 말할 정도로 내국인 사찰의혹에 대해 단호히 부인했다. 솔직히 IT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볼 때, 이 문제의 핵심은 내국인 사찰을 했는가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의 확인을 위해 안철수 의원이 요청했던 로그 파일을 비롯한 30여개의 자료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것은 전문가들에게는 이해하기 쉬운 것일지 몰라도, 일반인들에게는 무슨 고차방정식 같은 문제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바로 이 대목을 새정치민주연합은 고민해야 한다. 사안이 이렇듯 전문성을 요하고 복잡한 경우, 여론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고 뿐만 아니라 여론의 지지를 받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내국인 사찰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나왔거나, 사찰 피해자가 있어서 스스로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까지로만 볼 때, 내국인 사찰에 대한 증거도 나온 것이 없고, 내국인 사찰 피해자가 나온 경우도 없다. 지금까지 사실로 확인된 부분은 국정원이, 미국의 FBI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해킹 팀으로부터 RCS라는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했었다는 사실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했다는 사실로부터 내국인 사찰의혹을 제기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구체적인 피해자나 증거는 없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계속 끌고 가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구체적인 피해자나 물증이 나오면, 전 국민이 자신도 도ㆍ감청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문제 풀기가 좀 쉽겠는데, 지금까지로 봐선 일반 국민들은 그저 남의 이야기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점이 얼마 전 메르스 사태와 다른 점이다. 즉, 메르스 사태의 경우는 눈앞에서 사람들이 계속 사망하고, 자신도 감염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에 관심이 폭증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슬그머니 손을 떼기에는 문제를 너무 키워 놨다. 그래서 손을 뗄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의혹을 풀 자신도 없어 보인다. 국정원의 정보활동에 관한 문제라 워낙 민감한 사안이고, 그래서 무작정 자료를 넘겨달라거나 국정원을 조사하겠다고 나서기도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데, 자칫 안보를 망각했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전문가들에게 각서나 서약서를 받고, 국정원 자료를 검토하거나 국정원을 방문해서 조사하게 하면 된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것도 현실성은 매우 약해 보인다. 우선 서약서나 각서는 법적 효력이 전혀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조사 이후에 비밀보장 약속을 깼다 하더라도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역으로 이들이 그런 약점을 빌미로 국정원의 기밀을 다른 곳에 넘기는 사태가 발생 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들 전문가들은 공무원 신분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국정원이 야당의 요구를 들어줄 리 만무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야당은 의혹만 남발하고 결론은 찾지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처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본인이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지만, 국회 정보위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에 제기한 국정원 내국인 사찰 의혹은 여론의 관심과 지지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유야무야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야당이 문제제기를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명분적으로는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정치 공학적 측면으로 볼 때 이런 종류의 문제제기는 그다지 현명하거나 효율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