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네 식구들’ 열연 오현경
“나 미스코리아 나갔던 여자야!” 주문처럼 되새기던 말 뒤에 오현경(43·사진)은 “난 진인데…”라며 조용히 속삭이곤 했다. 1989년도 미스코리아 진으로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이후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했다. ‘결혼 1순위’에 ‘남자들의 로망’으로 꼽히는 미스코리아 출신 여배우였지만 그 뒤론 풍파가 많았다. 문영남 작가와는 벌써 네 번째 만남, 오현경의 재기작 ‘조강지처 클럽’(SBSㆍ2007)에 이어 KBS 2TV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로 다시 만날 때 문 작가는 오현경에게 특별한 요청을 했다. “현경아, 넌 미스코리아야. 지금도 충분히 예뻐. 그런데 일은 너무 오래 쉬었고, 웬만한 연기는 한다고 했지만 다른 게 필요하지 않겠니? 네가 이걸 해내면 사람들이 널 달리 생각할 거야.” 욕먹을 각오는 미리 해두라는 이야기였다.
오현경과 ‘막장 캐릭터’ 왕수박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인생의 멘토’와도 같은 문 작가의 주문에 오현경은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만큼 책임감을 느꼈다. 현장에선 드라마 캐릭터와는 어울리지 않게 ‘반장’ 역할을 맡아 선후배를 챙겼을 정도다. 드라마의 결과도 좋았다. 다채널 시대 ‘시청률 잔혹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지상파 드라마 시장에서 47%대의 경이로운 시청률로 종영한 ‘왕가네 식구들’에서 오현경은 일명 ‘복드(복장 터지는 드라마)’ 신드롬의 주역이 됐다.
드라마를 끝낸 뒤 딱 한 주를 보낸 지난 17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오현경은 “주말에 일이 없어 늦잠을 자는 게 참 이상하다”며 그제야 종영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현경이 연기한 왕수박은 내세울 거라곤 예쁜 얼굴뿐이어도 엄마의 무한한 사랑 덕에 안하무인 공주님으로 성장한, 미성숙한 여자였다.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한 남편이 사업 실패 이후 택배기사로 전락하자 내조는커녕 바람이 났다. 모성애도 없는 엄마였고, 벼슬도 아닌데 미스코리아 지역 예선에 나갔다는 사실만을 ‘평생의 훈장’으로 품고 사는 여자였다. 왕수박을 만나자 오현경은 욕도 많이 먹었다. 스스로는 “연기를 대단히 잘하지 못한다”며 “문영남 작가와 연습의 힘”이라고 하지만 오현경은 곧 왕수박인 것처럼 이입했다. 실제론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해 끙끙 앓기가 일쑤고, 자식을 보낸다는 건 “팔다리를 끊어내는 것”이라는 절절한 모성애를 지닌 ‘열혈엄마’였음에도 그렇다. 닮은 점이라곤 찾을 수 없었지만 오현경에겐 ‘막장 캐릭터’ 왕수박을 위한 ‘변’이 있었다.
“사실 저도 욕했어요. 그런데 수박이에겐 엄마의 지극한 사랑이 참 특별했던 것 같아요. 사랑만 받고 자라니 다른 사람이 아픈 것도 모르고, 자아가 뭔지도 모르는 미성숙한 인간이었던 거죠.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은 너무나 많아요. ‘왕가네 식구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또 그들의 성장 과정을 왕수박과 엄마 이앙금(김해숙 분)을 통해 보여준 드라마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드라마는 마지막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갑작스레 개과천선한 왕수박과 이앙금 여사, 30년 후 ‘왕가네’의 일상을 보여준 해피엔딩이 시청자는 낯설었다. 드라마 최종회는 결국 KBS 2TV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의 제왕’에서 패러디되며 ‘막장 중의 막장’으로까지 불렸다.
“결말이요? 전 기발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잖아요. ‘이렇게 살아보니 꿈을 찾으면서 사는 재미가 있었다’고요. 요즘 100세 시대잖아요. 건강하게 살아 황혼에도 각자의 꿈을 찾아가는 모습이 희망적인 교훈을 준 것 같아요.”
드라마 한 편을 통해 오현경은 많은 것을 얻었다. 비난만큼의 사랑이 돌아왔고, 현장에서 만난 선후배 연기자들을 통해 책임감을 배웠다. 드라마를 끝낸 이후 찾는 곳도 많아졌다. KBS2 ‘해피투게더 3’를 비롯해 데뷔 25년사를 풀어낼 토크쇼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출연도 앞두고 있다. 차기작은 결정하지 않았지만 오래 쉬진 않겠다고 한다.
“뭘 하는 게 좋을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길진 않을 거예요. 한 번 쉬면 또 얼마나 쉬게 될지 모르고, 오래 쉬고 있으면 불안함과 뒤처진다는 기분이 커지는 것 같아요. 바로바로 일을 해야 감을 잃지 않거든요. 얼마 걸리진 않을 거예요.”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제공=곰엔터테인먼트, KBS]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