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 주민번호 표기 논란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 지난 몇 년 동안 동남아권 호텔에서 근무했던 한국인 A씨는 현지 직원들이 호텔을 방문한 한류스타 B씨의 여권에서 주민번호만 몰래 따로 메모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일반 한국인 주민번호를 알아내 악용하는 것도 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올해 초 중국으로 출장갔던 회사원 C씨는 출장 기간 내내 중국어와 한국어로 된 각종 스팸 문자가 날아와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현지 가이드는 공항 직원이 부실한 관리를 틈타 본인 여권에 적혀있던 주민번호와 개인 정보 등을 슬쩍 빼돌려 중개업체 등에 팔아넘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휴대전화 서비스 해지를 신청한 고객 정보를 빼돌려 불법으로 거래한 일당이 경찰에 적발되는 등 개인정보 관련 범죄가 날로 다양화ㆍ조직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국인의 개인정보가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논란의 중심은 여권에 고스란히 적혀 있는 주민번호 뒷자리다. 여권은 해외 숙박이나 교통시설 등에서 현지 외국인들이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만큼 단순 개인정보 유출을 넘어 제2, 제3의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8일 정치권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여권에 주민번호를 기재하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태국ㆍ말레이시아 등 총 5곳뿐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주민번호를 선택적으로 기재하거나 아예 기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국내 유명 스타들이나 단체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개인정보 유출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국회의원 일부를 중심으로 여권의 주민번호 삭제를 추진 중이다. 오제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4월 여권에 주민등록번호를 삭제하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외교부와 법무부 등 관련 부처에서 현실적인 어려움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어 관련 논의는 큰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출입국 심사에서 이름과 생년월일이 같을 경우 주민번호가 없으면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대부분 국가들은 여권에 주민번호가 따로 기재돼 있지 않아도 별다른 문제없이 출입국 심사를 하고 있어서, 한국 정부 측의 ‘행정 편의주의적’인 사고가 내포해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이르면 8월말부터 국정감사와 정기국회가 평소보다 빨리 시작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 기간 동안 여권에서의 주민번호 삭제 법안에 대한 극적인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한다.

bigroot@heraldcorp.com

<사진=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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