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박영서 특파원] 지난해 12월 15일 오전 비가 내리는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성 하이커우(海口)시의 한적한 주택가 도로.

가정방문 차 발걸음을 재촉하던 유치원 여성교사 양(楊)모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갑자기 하수구 맨홀에서 물에 퉁퉁 불은 사람 손이 불쑥 나와 흔들어대는 것을 본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한 여성이 맨홀 속에 빠져있음을 알게됐다. 곧 경찰에 신고했고 그 여성은 구출됐다.

맨홀 깊이는 사람 키를 훨씬 넘는 3.2m. 사람이 빠지면 그 속에서 아사하거나 익사해 하수구를 통해 바다로 떠내려갈 상황이었다.

구조된 여성은 후난(湖南)성에 사는 궈(郭)모씨. 궈씨는 사건이 발생하기 1주일 전 같은 고향사람인 한 남성의 연락을 받고 하이난다오로 왔다.

그 전에 궈씨는 이 남성에게 10만위안을 빌려주었다. 그가 빚을 갚겠다고 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폭우는 아니지만 많은 비가 내린 12월 12일 저녁, 그 남성은 궈씨에게 “미용실로 가서 머리나 하자”고 권유했다.

우산을 같이 쓴 채 길을 가던 두 사람. 갑자기 그 남성이 “앞에 택시가 있으니 빨리 잡자”면서 궈씨를 재촉하며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궈씨가 사방을 잘 볼 수 없도록 우산으로 궈씨의 시선을 고의로 막았다.

궈씨는 맨홀 입구 위로 발을 디디는 순간 맨홀 속으로 빠져버렸다. 그러자 남성은 거칠게 궈씨를 맨홀 속으로 완전히 밀어넣었다. 이후 뚜껑을 덮고 여기에 널빤지를 가져와 입구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그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갔다.

궈씨는 후에 이렇게 설명했다. “저녁 7시여서 사방은 어두웠고 비까지 내렸다. 길에 종이박스가 깔려있었다. 종이박스를 밟는 순간, 다리가 쑥 빠져버렸다.”

길가에 설치된 폐쇄회로TV의 영상을 보면 그날 저녁 우산을 쓴 채 한 손에 종이박스를 잡은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맨홀 뚜껑을 옮긴 후 뚜껑 대신 종이박스를 올려놓고 떠난다. 얼마 후 그 남자는 궈씨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다.

깜깜한 맨홀 속에 갇히게 된 궈씨는 소리쳐 구조를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맨홀 벽은 너무 미끄러워 올라갈 수 없었다. 물은 갈수록 불어났다. 목이 마르면 벽의 빗물을 핥아마셨다.

살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는 가지고있던 우산 끝에 위안화 200위안을 말은 후 맨홀 환풍구 구멍에 간신히 끼어넣었다. 지나가는 행인이 돈을 발견하면 자신을 구출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행인은 돈만 가지고 갔다.

맨홀에 갇힌 지 사흘째 되는 날 의식이 희미해졌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입고있는 옷들을 매듭을 지어 연결해 끈을 만든 것이다. 그리곤 맨홀 상단을 가로지르는 파이프를 겨냥해 끈을 던졌다.

수백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끈을 파이프에 거는 데 성공했다. 줄을 잡으며 있는 힘을 다해 서서히 위로 올라간 고씨는 마침내 뚜껑을 밀치며 손을 내미는데 성공했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해 고향인 후난성으로 돌아간 그 남성을 체포했다. 성이 궈(郭)씨인 그 남성은 처음에 치정관계라고 강조하면서 고의살인을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이 폐쇄회로TV의 영상 등 증거를 내밀자 죄를 자백했다.

중국중앙방송(CCTV)은 이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을 보도하면서 “60시간이 넘게 맨홀에 갇혀 생사기로에 서있던 한 여성이 침착하게 기지를 발휘해 생명을 구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