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존재에서 생물학계 슈퍼스타 등극까지

[북데일리] 여름날 남은 음식을 조금만 늦게 치워도 초파리 떼가 들끓는다. 음식이 부패할 때야 비로소 존재를 확인하는 초파리. 일반인에게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지만 알고 보면 고맙고 놀라운 생물이다.

<초파리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갈매나무. 2013) 책의 주인공은 이름처럼 초파리다. 초파리는 유전학의 기초를 세우는 동시에 분자생물학, 발생생물학, 진화생물학의 연구 범위를 넓히며, 과학자들로부터 최적의 실험동물로 인정받아 왔다. 여기엔 초파리 특유의 장점이 있다.

작은 크기와 까다롭지 않은 습성 때문에 초파리는 기르고 먹이는 데 비용이 얼마 들지 않는다. 500밀리리터 크기의 우유병에 썩어 가는 바나나 한 조각만 넣어 두면 초파리 200마리가 2주일 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암컷 한 마리가 알을 수백 개나 낳기 때문에 번식시키기도 쉽다. 게다가 초파리는 한 세대가 사는 시간도 짧다. 태어나서 생식하고 죽기까지 불과 몇 주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1900년 초파리가 하버드대학교 연구실에 처음으로 데뷔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윗 글의 마지막 부분이 중요하다. 인간이나 동물을 실험대상으로 삼을 때,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진화과정을 지켜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흥미진진하게 읽힌다는 점이다. 초파리를 아는 사람만 알고 있었던 초파리의 무용담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런던, 러시아 등 세계 곳곳의 연구실을 배경으로 그려 나간다.

초파리는 자연 선택설의 실질적인 증거를 발견하고 멘델의 완두콩 유전 법칙을 증명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최초로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는 데에도 누구보다 크게 기여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눈에 띄면 바로 눌러 죽여야 할 벌레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초파리가 인간 유전학과 관련된 수많은 수수께끼에 힌트를 제시하는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화생물학을 연구한 저자 마틴 브룩스는 이 과정을 생생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보인다.

초파리는 우연히 실험실에 등장해 슈퍼스타가 되었다. 작고 쓸모없어 전혀 인기를 끌지 못할 존재로 보였지만, 최고의 주인공이 됐다. ‘초파리가 주연이고 과학자들은 조연으로 등장하는 한 편의 소설’이라는 말이 딱 맞다. 이 책을 먼저 읽은 한 교사의 평 역시 틀림없다.

‘그런데 이 초파리, 알고 보니 생물학계에서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었다. 유전학계에서는 그야말로 비틀즈! 어려울 것만 같은 생물학 이야기인데 액션, 호러, 하드코어, 멜로가 뒤섞인 영웅 이야기처럼 읽힌다. 초파리의 세계에서 인간을 읽는다. 초파리가 다시 보인다.’ -민성혜(이대부속중학교 국어교사)

특히 실험실에 돌연변이 확인을 위해 수만 마리의 초파리를 키우며 연구에 몰두한 생물학자 토머스 헌트 모건 이야기는 인류의 발전을 이끈 과학의 진보가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한 깊은 감명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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