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서지혜 기자]대기업 광고기획 부서에서 일하던 최미영(30ㆍ가명) 씨는 최근 회사의 관료제적 소통에 한계를 느끼고 카카오 마케팅 직군으로 자리를 옮겼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보고 과정을 거치다 보면 휴지조각이 되기 일쑤였다. 최 씨는 연봉은 낮더라도 주체적으로 일하며 회사와 성장해나가겠다는 생각으로 이직을 결정했다.
최근 고연봉의 대기업 직원들 중 카카오로의 이직을 희망하는 인구가 늘고 있어 화제다. 27일 IT업계 관계자 및 헤드헌터들은 “취업포털에 NHN과 같은 IT기업뿐 아니라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카카오로의 이직을 고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카카오에서 근무하는 400여 직원 중 대다수는 경력직이다. 이 중엔 삼성, LG, SK 등 대기업 출신이 포진했다. 야후코리아, SK커뮤니케이션즈, KTH 등 최근 철수ㆍ구조조정을 겪은 업체 직원들 중 상당수도 최근 카카오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들은 주로 전 직장에서 디자인, 개발, 광고 등 창의력을 요구하는 직군에 종사했다.
이처럼 대기업 IT 직군 종사자들이 카카오로 향하는 이유는 대기업에 만연한 관리자와 개발자 사이의 ‘갑을구조’ 때문이다. 개발, 디자이너, 광고 등의 업무는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실패하더라도 실행에 옮겨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수천 명의 직원이 일하는 대기업에서 IT 개발자들은 관리자의 ‘을’이 되기 십상이다.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프로젝트만 진행하다보니, 활발한 토론은 커녕,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지난 2011년 LG전자의 한 연구원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카카오로의 이직을 선택하면서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부재하고, 혁신을 가로막는 장치들이 너무 많아 주인의식이 생기지 않는다”며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퇴사 이유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반면 카카오는 책상 사이의 파티션 높이를 낮추고, 직원들이 이름과 직책 대신 입사 시 지은 영어 이름을 부르는 등 의사소통을 수월하게 하는 다양한 장치를 갖고 있다. 이석우 대표와 이제범 대표도 각각 비노(Vino), 제이비(JB)라는 영어 이름을 쓰면서 직원들과의 경계를 허물었다. 직원들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경영진의 노력이다. 이런 문화는 게임하기, 플러스친구, 카카오페이지 등 다양한 혁신적 상품들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부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대기업은 보안 등 다양한 이유로 직원 간 소통을 막아 창조경제의 원동력이 되는 창의적 생태계 형성을 방해한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창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대개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데 대기업은 출퇴근시간부터 복장까지 제약이 많다”며 “IT 종사자들이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대기업에서 벤처로 향하는 사례가 늘어날수록 창의적 생태계가 자발적으로 조성되고 창조경제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