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정경숙 씨가 본 김재수 사장은
남편의 DNA에는 ‘나라를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고 봉사해야 한다’는 공직자로서의 사명감이 박혀 있는 듯합니다.
남편과 아버지를 떠나, 우리 가족은 공직자로서의 남편을 존경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비도덕적이거나 부당한 행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요. 법과 도덕적인 테두리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라 정직한 아버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좋은 인생의 멘토입니다.
남편은 바쁜 와중에도 항상 기록하고 메모하는 좋은 습관이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펴내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며 이를 적절하게 업무에 적용시키는 모습을 볼 때면 간혹 학자보다도 더 학구적인 자세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렇다 보니 취미와 특기가 ‘일’이에요. 미국 농무관 근무 시절, 평생 첫 가족 휴가를 간 적이 있었는데, 휴가 첫날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미국 ‘광우병 사건’이 터져 다음날 새벽 남편 혼자 워싱턴으로 돌아갔답니다. 지금도 우리 딸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고 불평할 정도예요.
요즘 대세는 반전 있는 사람이라는데 제 남편이 그래요. 업무적인 면에서는 만점이지만 가정에서는 거의 낙제점이지요. 생활은 서툴러 상상 이상으로 비경제적인 남편입니다. 경제학 박사인데 말이죠. 집안일은 모두 제 차지랍니다.
하지만 보통 남편이 일할 때 보여주는 냉정한 모습 때문인지 직원들은 굉장히 어려워한다고 들었는데, 우리 가족은 이 점을 이해하기 어려워요. 경북 영양 산골 출신이라 감정 표현은 서툴지만 집에서는 ‘전국 딸바보대회 1등’감이라고 할 정도로 따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벌써부터 딸아이의 결혼 얘기만 나와도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해요. 오빠와 일곱 살 차이가 나는 딸에게는 막내라 사랑을 참 많이 줬다면, 아들에게는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표현을 잘 못할 뿐이에요.
그래도 아이들과 썰렁 개그를 주고받을 정도로 소탈하기도 하고요. 방법이 세련되지 못할 뿐, 아이들도 그 점을 충분히 느끼기 때문에 한평생 일로 바쁜 아빠를 항상 이해하고 존경하는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은 남편을, 아버지를 이미 ‘나라에 바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라에 쓰임을 다 한 후 노후에는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취미생활도 하며 행복하게 오순도순 살아갔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