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는 북해(동해)에 있다.북서 방향으로 1박2일을 가면 송도(松島ㆍ독도)가 있다. 다시 1일을 더 가면 죽도(竹島ㆍ울릉도)가 있다. 그곳은 일반인들이 말하기를 기죽도라 하는데 대나무와 물고기, 사슴이 많다. 이 두 개의 섬은 무인도다. 그렇다면 일본의 건지(경계선)는 이곳 은주가 일본 국경의 끝이다.”
1667년 일본 이즈모국 마쓰에번의 관리 사이토 호센이 번주의 지시에 따라 1667년 8월부터 약 두 달간 은주에서 보고 들은 일을 기록한 보고서 ‘은주시청합기’ (隱州視聽合記)의 내용이다.
지금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로 부르는데 이 문서에 따르면 다케시마는 울릉도를 지칭하며, 독도는 송도라 표기했다.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 각축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러시아와의 해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독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로 한다.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임자 없는 땅, 즉 무주지(無主地)로 규정해 일본 영토로 편입하는 결정이 내려지고 도근현(島根縣ㆍ시마네현)이 1905년 2월 22일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 편입을 선언한다. 일본 영토였다면 굳이 새로 고시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일본 민간인들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종의 군사적 조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1905년 6월 20일 도쿄의 하쿠분칸박문관출판사에서 발간한 ‘일노전쟁실기’ 부록에 실린 ‘한국 전도’를 보면, 마감선 밖에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있다. 일제는 편입 고시와 함께 망루와 통신시설을 설치했는데, 이후 이를 실효적 지배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로부터 100년 후 시네마현이 독도 편입 고시한 날을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로 정하고 매년 대대적인 행사를 벌여오고 있다. 스스로의 역사를 먹칠하는 일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