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4회> 총칼 없는 전쟁 4

5개국 관통 랠리 출전에 대비하기 위해 갑호 비상을 걸어놓은 상태였으므로 거성그룹 스포츠마케팅 팀원들은 졸지에 바빠지기 시작했다. 유호성과 권도일 선수의 국제 A급 라이선스 유효기간을 재점검하는 것으로부터 심전도와 혈당검사가 특별 추가된 건강진단서 발급, FIA 신청 재확인 등등 행정적인 업무는 물론이고 각종 언론기관을 대상으로 한 홍보, 광고에 이르기까지 불 난 호떡집과 다를 바 없었다.

“이번에 우승하면 월급 좀 올라가는 거야?”

“월급이 문젠가? 승진 여부가 달린 일일세.”

“그건 결과가 좋을 때 얘기고… 잘리지 않으려면 열심히들 하세요.”

대충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으니 고무적이라 할 만했다. 그 와중에 특히 현성애는 철야근무를 자청하면서까지 열성을 보이고 있었다. 1974년 산 치타를 오로지 그녀 혼자의 판단으로 튜닝하기 때문에 생겨난 애정이었을 것이다.

스포츠 용도에 맞춘 브레이크 패드, 일반도로용이지만 경기지향적인 S타이어 점검 등등 기초적인 사항부터… 토 아웃으로 포지션을 잡은 휠 얼라인먼트와 LSD로 통칭되는 차동제한장치 세팅 점검, 조종성 향상을 위한 서스펜션의 강약에 이르기까지 현성애는 심혈을 기울여 점검했다.

하지만 그녀는 튜닝에 전념하면서도 문득 일손을 멈추고 허공을 응시하는 일이 잦았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비롯된 갈등… 이를테면 명예를 택할 것인지, 보복을 꾀할 것인지 망설일 수밖에 없는 딜레마 때문이었다. 어떤 딜레마냐고? 그녀가 원래 유민 회장의 비서였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간단히 풀릴 문제 아닌가.

2년 전, 베트남 내해에 머물던 크루즈 선상에서부터 그녀는 유민 회장과 은밀한 관계를 이어오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닭 쫓던 개의 신세로 전락하여 유민 회장에게 보복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던 중에 랠리 참여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유민 회장의 아들 유호성과 한 팀이 되어 머신을 튜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아들놈을 확 죽여버려?’

하다가…

‘아니면, 척추를 부러뜨려?’

하면서 멀리 허공을 응시하곤 했다는 말이다.

튜닝… 이를테면 머신 내부의 기계장치를 이리저리 손보는 과정에서 스트럿 바 하나만 슬쩍 비틀어 놓아도 경주 차는 한계주행 시의 하중을 못 이겨 도로를 이탈하기 쉽다. 시속 200km로 달리다가 도로를 이탈하면? 그야 뻔할 뻔자다. 따라서 각종 부품을 손볼 때마다 갈등에 빠져들곤 했던 것이다.

원래 국제경기는 일찍부터 결정되어져서 FIA 국제 스포츠 캘린더에 등록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번 5개국 관통 랠리대회는 캘린더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FIA 국제 캘린더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경기라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급조한 경기이기 쉽다. 정치적인 배경을 품고 벌이는 속도경기에서 설혹 사고가 난다 하더라도… 역시 정치적 파워에 밀려 조용히 해결될 경우가 많을 것이다.

‘아니면 이번 기회에 내 이름을 빛내볼까?’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따져보니 천국과 지옥 사이에 놓인 트릴레머, 세 갈래 길이었다. 그러나 하루에 한 번씩 모이는 정례회의 석상에서 재벌2세를 만날 때마다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곤 했다.

“현성애 씨, 이번 일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랠리경기란 드라이버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튜닝기술이 더욱 중요하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런 공치사를 들을 때마다 유민 회장에 대한 복수심은 흐물흐물 녹아버리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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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