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윌리엄 렌퀴스트를 연방대법원장에 지명하자 미국 민주당이 발칵 뒤집혔다. 줄곧 보수적 견해를 보인 그가 대법원장에 임명된다는 것은 사회의 성격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청문회에 참가한 민주당 의원들은 그의 뒤를 이잡듯 캤지만 교통법규 범칙금 외에는 찾아낸 것이 없었다.
이동흡(62ㆍ사법연수원 5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평소 윌리엄 렌퀴스트에 대해 존경심을 표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청문회 풍경은 사뭇 달랐다. 이 후보자의 청문회에서는 막판까지 수많은 의혹이 쏟아졌다. 논란이 된 의혹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특정업무경비를 개인계좌에 넣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공금 횡령”이라는 야당 의원들의 비판에도 이 후보자는 “횡령하지 않았다”고만 할 뿐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다른 의혹들에 대해서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의 흐릿한 변명을 대는가 하면 거짓해명을 했다가 지적을 받고는 말을 바꾸기도 했다. 일부 사안은 실정법 위반 가능성까지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조직을 아우를 만한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이 후보자에 연관된 의혹은 대부분 법조계 안팎의 고발로 제기된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 후보자 지명 후 법조계 인사들이 앞다퉈 그의 과거 잘못들을 언론에 제보한 것은 그가 조직 내에서 조금의 신망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추문에 정작 헌재 소장으로서 필수적인 헌법에 대한 가치관이나 과거 판결에 대한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도 못했다. 이 후보자는 친일 성향 판결, 보수 편향적 성향 등이 문제된 바 있다.
청문회를 주도했던 여야 의원들은 물론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의 상당수는 한국 사회의 가치지향인 헌법기관의 수장이라는 큰 그릇을 맡기에는 그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청문회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에 난항이 예상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후의 법의 수호자, 법치국가의 보루로 남기에는 흠집이 너무 많다는 평가 때문이다. 이제 선택은 이 후보자의 몫이다. 정쟁으로 비쳐질 표결까지 가느냐, 깨끗이 물러나느냐 결단은 온전히 그에게 남아있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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