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9회> 총칼 없는 전쟁 (4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유호성과 권도일, 현성애가 꽃게 튀김으로 배를 불린 뒤 이를 쑤시고, 강준호와 소위 유호성 케어 팀원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내일 벌일 골프게임의 단꿈에 젖어있는 동안 강유리는 중국 후베이성의 성도인 ‘우한’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상하이 푸동공항에서 아버지 강준호와 헤어진 뒤 즉시 우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갈아탔던 것이다. 이미 어둠이 점령한 우창의 ‘동후호(東湖)’ 주변을 거닐며 그녀는 짙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아버지는 속도 모르고 님을 망치게 하라는데 이걸 어쩌면 좋아…’
얼핏 대중가요 가사처럼 들릴 지도 모르는 말을… 그녀는 콧노래에 맞춰 흥얼거리며 호수 주위를 걷고 있었다. 나중에야 삼수갑산엘 갈망정, 일단 님을 보기 위해 우한까지 찾아온 제 자신이 문득 서글퍼지기도 했던 것이다. 마음은 서글플 따름인데 어째서 콧노래가 흥얼거려질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님이 누구냐고? 그야 물론 집안을 망하게 한 원수가문의 아들 유호성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그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어쩌면 대중가요의 노랫말 뺨 칠만한 일이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팔자소관인지도 모르겠지만.
“유리냐? 현지 분위기는 좀 어때? 석간신문이나 저녁뉴스에 랠리대회 기사 좀 떴어?”
아버지 강준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녀는 무어라고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웬일인지 우한 시내의 분위기는 랠리대회가 열리는 지도 모르는 듯 잠잠할 뿐이었다. 중국어와 중국말은 몰라도 화면에 비쳐지는 그림이라거나 혹은 신문사진 만으로도 랠리 분위기는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대회가 시작되지 않아서 그런지 잠잠한 편이에요. 그나저나 아버지… 취하셨어요? 벌써 혀가 꼬인 것 같아.”
“그럼 취했지. 이 좋은 날 아니 취하면 어찌할까?”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흐흐흐, 좋지. 유민 회장이 조만간 망가지게 될 걸 생각하면 자다가도 신나서 벌떡 일어날 판이다. 그래, 저녁은 먹었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부모를 위해 사랑하는 낭군을 버리고 자명고를 찢은 낙랑공주가 되어야만 할 것인가? 아니면, 낭군을 위해 가문의 결정을 짓밟아버린 로미오가 되어야 할 것인가… 생각할수록 막연하기만 했다.
“옛날부터 동호의 물고기 맛은 일품이라고 했다. 물고기 대가리에 다진 고추와 간장을 넣고 조린 ‘위토우’란 걸 사먹어 봐라. 매큼한 게 입맛에 맞을거야. 그 국물에 국수를 비벼먹어도 좋아.”
“뭐라더라? ‘러깐미엔’이라고 하나? 국물 없는 마른국수를 사먹었는데 거의 다 남겼어요. 짜고 뜨겁기만 한 게 영…”
“그런 싸구려 음식을 먹으면 어떡해? 장차 일전을 벌일 사람이… 내가 푸동공항에서 이르지 않았더냐? 너는 적벽대전의 제갈공명이 되어야 한단 말이다. 일단 잘 먹어야 적벽대전을 치르든지 말든지 하지.”
강준호는 이렇게 끌탕을 했다. 원래 우한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적벽대전의 무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적벽 대전(赤壁大戰)은 중국의 삼국 시대, 통일을 목표로 세력을 계속 팽창하던 조조에, 손권과 유비가 연합해 대항하여 양자강에서 벌어진 큰 전투이다. 주유와 정보가 좌·우독이 되어 각각 1만 명을 거느리고 유비와 함께 진격하였는데 적벽에서 조조군을 만나 그들을 크게 격파했다. 결국 조조군은 남은 함선을 불태운 채 병사를 이끌고 퇴각했다. ‘삼국지 오주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런 복잡한 내용은 염두에 둘 필요 없고… 단순히 대입해 보자면 손권과 유비처럼 열심히 싸워서 유민그룹의 일당을 물리치라는 뜻이었다. 하필이면 강유리가 머물고 있는 우한이 적벽대전의 무대였으므로 한번 외어 본 염불이었을 것이다.
동후호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길게 늘어선 메타세콰이어 나뭇잎이 우수수 흔들리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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