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 양성화’ 전문가 5인 진단
가족간 계좌이체·영수증 없는 현금거래도 범주에 포함 국세청 금융정보 접근 강화는 효율성·사생활 침해 ‘양날의 칼’
현금영수증·전자금융 확대로 지하경제 자연적 감소 추세 온라인 현금거래 감시 강화 등 효율성 더해 세원 확보 나서야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새 정부의 복지정책으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 국고 부담, 무상보육 등 새 정부가 내세운 공약 가운데 가장 지지를 받고 눈길을 끈 것이 복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복지에 쓰일 돈이다. 공약대로라면 앞으로 5년간 복지예산으로만 135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새 정부는 재원확보를 위한 카드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빼들었다. 숨어 있는 세원(稅源)을 찾아 복지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다.
헤럴드경제가 15일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전문가 5인의 의견을 물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과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거시경제본부장,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 등 5명의 전문가가 이에 응했다.
전문가들은 조세회피 목적으로 공식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한다는 큰 흐름에는 찬성하되, 방법론에 있어서는 여러 해석을 내놓았다. 특히 지하경제가 부정부패나 자금세탁뿐 아니라 가족 간 계좌이체나 영수증 없는 현금거래 등도 포함하는 만큼 서민경제를 해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지하경제 규모 추정부터가 쉽지 않다=우선 지하경제의 규모를 파악해야 어느 정도 필요한 재원 확보가 이뤄질지 추정할 수 있다. 문제는 공식적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의 추정이 어렵다는 데 있다.
최근 조세연구원은 국내 지하경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17~19%로 내다봤다. 우리나라 GDP가 1200조원대임을 감안하면 200조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보다 더 높은 GDP 대비 23%를 내놓았다. 이렇게 되면 지하경제 규모가 최대 290조원으로 늘어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일단 한국의 자영업 비율이 28.8%로 미국(7%)이나 일본(12.3%) 등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높아 실제적인 소득 파악이 힘들다”면서 “공식 일자리 외에 비제도권 노동시장에 편입된 노동자 역시 지하경제 형성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바로 여기서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의 ‘정교함’이 요구된다. 우선 지하경제 양성화가 영세 자영업자나 사회적 약자인 비공식 노동자의 ‘증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지하경제라 하면 조직폭력배의 검은돈이나 해외 밀반출에서 얻는 수익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들을 추적해 세수를 늘리려는 건 본연의 일인 데다 적발도 힘들다”면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가장 먼저 세금이 거둬질 곳은 현금 할인 등으로 수입을 눈속임하던 동네 슈퍼마켓 등 영세 자영업자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지하경제 규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수준인 GDP의 15% 수준으로 줄일 경우, 조세연구원 기준(지하경제 규모 GDP의 17~19%로 추정)으로 거둘 수 있는 세수가 GDP의 1~2% 수준인 12조~24조원가량이라는 데 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하경제 양성화 자체는 찬성하지만 남아 있는 지하경제 규모에 대한 논란이 있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축소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일단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인터넷뱅킹 등 전자금융 확대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지하경제의 자연적 감소 추세가 대단히 빠르기 때문에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탈세에 대한 법 집행을 무겁게 하는 것부터 시작=유병규 본부장은 “관혼상제 관련 생활서비스업이나 음식업, 도소매업, 교육 및 의료 분야의 자영업자 가운데 성실납세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면서 “선진국과 같이 과세관청의 금융정보 접근을 강화하고 금융정보기구와 국세청의 협력 강화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사상품이나 밀수, 부정부패 등 생활경제와 무관한 거액의 불법 자금거래에 대해선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차단해야 하고, 서민경제에 대해선 성실납부를 유도하는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금회피에 대한 법 집행을 무겁게 해야 한다는 의견은 김자봉 연구위원도 찬성했다. 김 연구위원은 “탈세범에 대한 처벌이 선진국에 비해 약한 편”이라며 “그럼에도 금융실명제나 현금영수증 등으로 지하경제의 감소 추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법 집행을 엄격히 할 경우 감소세가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국회에서 입법을 추진 중인 국세청의 금융정보 접근 강화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지금도 고소득자의 세금 탈루를 추적하기 위해 국세청이 요청하면 은행이 관련 정보를 알려주도록 돼 있다”면서 “국세청이 모든 국민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설 수 없는 만큼 기초자료로 금융정보를 활용하게 되면 더 효율적인 세원 확보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거시경제본부장은 “금융거래 정보를 국세청에서 활용하는 데 대해 금융사생활이 침해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는 단서조항 등을 통해 세수 확보 차원에서만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망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더했다.
반면 국세청의 금융거래정보 활용이 금융사생활 보호에 어긋나고 기존의 금융실명제 등 관련 정책과 상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자봉 연구위원은 “금융실명제 도입한 해에 지하경제 규모가 5% 정도 떨어졌다”면서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하는 대신 금융사생활 보호가 효과를 발휘했던 셈인데, 죄를 짓지 않더라도 굳이 거래내역을 알리기 쉽지 않듯이 금융거래정보에 국세청 접근이 용이하게 되면 금융사생활 보호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사실상 ‘증세’라는 의견도 있다. 김정호 연세대 교수는 “신용카드를 안 받고 현금결제 시 할인을 해주던 자영업자뿐 아니라 결혼할 때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부동산 등 재산, 부부 사이에 자금이체 등도 어떻게 보면 지하경제 분류에 속한다”면서 “지하경제 양성화가 사실상 증세 효과를 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연진ㆍ이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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