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지난해 재결성된 들국화가 최근 ‘다시, 행진’ 콘서트를 열었다. 들국화는 전인권과 최성원의 불화가 해체의 주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노래 사이에 관객의 질문을 받아 궁금증을 해소해준 이번 콘서트에서 최성원은 “안 싸우면 밴드가 아니다”고 말했다. 전인권은 “음악과 돈 때문에 헤어진 게 아니라 성격 때문에 헤어졌다”고 했다.
여하튼 들국화는 싸워도 좋다. 음악적으로 개성이 있어서. 고로 우리는 빼어난 멜로디적 감성에다 부드러움을 입힌 최성원 스타일과 쇳소리까지 낼 정도로 고음이 위력적인 전인권 스타일 양쪽을 모두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최성원이 작곡한 ‘매일 그대와’와 ‘제주도의 푸른 밤’을 조금 더 선호하지만 ‘행진’과 ‘그것만이 내 세상’ 역시 전인권의 절규하는 목소리로 들어야 제격이다.
메들리로 들어 아쉬움이 남았지만 최성원의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을 오랜만에 들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신곡 ‘노래여 잠에서 깨라’도 들려줬다. 게다가 주찬권의 드럼은 장작을 쪼개는 듯한 강렬하면서도, 절제된 파워와 질주감이 여전했다.
이번 공연에서 반가운 건 전인권의 목소리가 전성기 못지않게 살아났다는 점이다. 무려 40년간 대마초를 피워온 탓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전인권이 다시 강한 고음을 낼 수 있었다. 고음에서는 소리의 세기가 너무 강해 귀를 살짝 가리고 들어야 할 정도였다. 나직이 읊조리는 저음 부분도 역시 연륜이 묻어났다.
들국화는 1985년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최고 명반으로 꼽히는 1집을 내놨다. 수록곡 9곡이 모두 히트하는 이변을 만들어냈지만 TV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언더그라운드 밴드라는 말이 어울리는 밴드다. 최성원은 “당시 가수들이 방송국에서 예능 PD를 만나면 깍듯이 인사를 하며 자세를 낮춰야 했는데, 우리는 죽어도 이런 걸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전인권은 “우리 음악의 뿌리는 당시 정부에 저항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키보드 주자인 허성욱이 교통사고로 고인이 됐고, 창단 멤버인 기타리스트 조덕환이 빠져 멤버도 이제 세 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록의 자유를 추구하던 세 명의 삐닥이에게서 나이 들면서 지니게 되는 여유와 관조가 느껴져 더욱 좋았다.
60세를 바라보는 이들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장점을 설명했다. 전인권은 “까먹어서 좋다”고 말했고, 최성원은 “별로 할 게 없어 연습을 열심히 한다”고 했다. 셋 다 편안해 보였다.
기성세대와 권위에 도전하고 저항하던 들국화가 나이 들면서 세상과 타협하는 게 아니라 좀 더 원숙해지고 깊어졌다. 거친 반항아적인 모습 대신 가지게 된 부드러운 중장년의 숙성된 모습은 안정감을 선사했다. 전인권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어눌한 듯 툭툭 던지듯 말했지만 그 말 속에는 인생의 내공이 느껴졌다.
이런 들국화의 노래는 세상사로 지친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에 충분했다. 원숙해진 들국화는 이들의 노래에 흐르는 ‘허무주의’마저도 멋지게 감싸 안고 있었다.
재결성 이후 들국화의 가장 큰 화두는 ‘청춘’과 ‘위로’라고 했다. 시중에 범람하는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기능적’ 메시지와는 다르다. ‘걱정 말아요 그대’라고 감싸 안으며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행진!’하라고 외치는 그들의 노래는 지친 청춘들에게 바치는 들국화만의 ‘감성적’ 응원가다. 들국화의 노래는 아픔의 시대를 함께한 청춘들의 로망으로서, 열정ㆍ저항ㆍ희망을 전하는 메신저로서, 그들을 위해 부르는 ‘힐링가’이자 응원가라고 할 수 있다. 들국화는 앞으로도 방송 출연 없이 공연과 인터넷, SNS로만 존재 이유를 증명하겠다고 했다. 유튜브 시대에는 들국화의 마케팅이 유효할 것 같다. 들국화라는 뮤지션을 하나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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